까악∼ 배설물 테러… 경기남부 떼까마귀 ‘골머리’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2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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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철 도심에 수천마리씩 출몰… 주민 “아침마다 분변 치우는게 일상”
소음피해에 전깃줄 끊어져 정전도… 이동경로 예측 어려워 퇴치에 한계

23일 경기 수원시 인계동의 한 거리에서 떼까마귀들이 전깃줄에 빼곡하게 앉아 있다(큰 사진). 길가에 주차된 차량에 떼까마귀 배설물이 쌓인 모습. 수원시 제공
23일 경기 수원시 인계동의 한 거리에서 떼까마귀들이 전깃줄에 빼곡하게 앉아 있다(큰 사진). 길가에 주차된 차량에 떼까마귀 배설물이 쌓인 모습. 수원시 제공
“까악∼. 까악∼.”

23일 오후 7시 경기 수원시 인계동 가구거리. 약 3500마리의 떼까마귀가 무리를 지어 날아다녔다. 현장 순찰을 돌던 황이화 수원시 환경교육팀 주무관은 “2016년 겨울 처음으로 수원 도심에 나타난 떼까마귀가 올해도 어김없이 출몰했다”며 “순찰을 돌며 개체수, 발견 장소를 확인하고 배설물 등의 피해가 우려되면 퇴치를 한다”고 말했다.

수원시는 인계동 등 빅데이터로 확인된 떼까마귀 주요 출현 지역 중심으로 매일 오후 6∼10시 ‘떼까마귀 퇴치기동반’을 운영한다. 녹색레이저 빔이 나오는 60cm 크기의 퇴치기를 이용해 떼까마귀를 쫓아낸다. 떼까마귀는 참새목 까마귓과(科)로 시베리아와 몽골에서 새끼를 낳고 겨울에 한국, 일본 등 남쪽으로 이동하는 철새다.

수원시의 퇴치 노력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은 떼까마귀의 배설물, 소음 등의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황 주무관이 순찰하는 동안 인도와 길거리에 주차된 20여 대의 자동차에는 떼까마귀가 남긴 배설물이 수천 곳이나 눈에 띄었다. 인근 정류장에 걸린 현수막에 ‘떼까마귀 출현 예상 지역, 전깃줄 아래 주차나 보행 시 조심하시길 바랍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지만 무색할 정도다. 가구거리의 한 상인은 “아침마다 가게 앞에 쌓인 겨울철 떼까마귀 배설물을 치우는 게 일상이 됐다”고 말했다.

머리 위 전깃줄에 앉아 있는 떼까마귀를 피하거나 손으로 머리를 가리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자주 보였다. 주민 김태성 씨(40)는 “까마귀 울음소리가 시끄러워서 불쾌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라며 “배설물은 특유의 냄새는 물론 바이러스 전염, 질병 등 위생 문제도 걱정된다”고 했다. 수원시는 최근 떼까마귀 배설물 40건을 채취해 조류인플루엔자(AI) 감염 여부를 조사했다. 다행히 모두 음성으로 나왔다.

수원 도심에 서식하는 떼까마귀는 오전 7시경 화성시 등의 논밭에서 먹이를 찾다가 오후 4시경 수원으로 돌아와 도시 전깃줄에 앉아 밤을 보내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떼까마귀가 도심에 몰려드는 이유는 충분한 먹이와 안전한 잠자리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박진영 국립생물자원관 국가철새연구센터 연구관은 “먹이, 잠자리뿐만 아니라 도심 고층건물이 떼까마귀에겐 방풍 작용을 하는 등 복합적인 이유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평택, 안산, 시흥 등지에도 떼까마귀가 출몰해 해당 지자체에 비상이 걸렸다. 평택시 관계자는 “평택시 안중읍 일대에서 수천 마리의 떼까마귀가 처음 발견됐다”며 “떼까마귀가 앉은 전깃줄이 끊어지면서 합선으로 정전이 발생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지자체들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없어 난감한 상황이다. 안산시 관계자는 “빅데이터 등으로 가장 많이 출몰한 지역과 시간대 등을 분석하지만 이마저도 참고 자료일 뿐”이라며 “조류 특성상 떼까마귀의 경로를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떼까마귀와의 공존을 모색해야 할 때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기섭 한국물새네트워크 상임이사는 “숲 등에 떼까마귀가 앉아 쉴 수 있는 공간, 시설을 만들어주면 주민 민원이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경진 기자 lkj@donga.com
#떼까마귀#수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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