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수-옛날얘기에 남의 인생 오지랖까지… 좀 참아주세요”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월 7일 03시 00분


[더 나은 100년을 준비합니다 / 청년, 꼰대를 말하다]
<3> 2020명에 물어보니

동아일보와 협업한 채강꼰대 팀(강승희·22, 채수선·22·이상
 성균관대)은 양경수 작가의 한 컷 만화 ‘약치기’의 형식을 빌려 선배와 꼰대의 차이를 ‘금꼰’ 포스터에 담았다. 채강꼰대 팀은 
묻지도 않았는데 먼저 나서서 훈수나 훈계를 쏟아내는 모습을 선배가 아닌 꼰대의 특성으로 꼽았다.
동아일보와 협업한 채강꼰대 팀(강승희·22, 채수선·22·이상 성균관대)은 양경수 작가의 한 컷 만화 ‘약치기’의 형식을 빌려 선배와 꼰대의 차이를 ‘금꼰’ 포스터에 담았다. 채강꼰대 팀은 묻지도 않았는데 먼저 나서서 훈수나 훈계를 쏟아내는 모습을 선배가 아닌 꼰대의 특성으로 꼽았다.
《단지 나이가 많거나 직장 상사라는 이유로 ‘꼰대스럽다’는 표현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그저 배운 대로, 그리고 자신보다 조직의 발전을 판단 기준으로 삼아 말하고 행동했을 뿐이다. 이들이 “도대체 왜?”라고 물어도 정확히 설명해주는 사람이 많지 않다. 그래서 동아일보가 대신 청년에게 물었다. 2020명의 청년이 밝힌 건 소통방식의 차이였다. 그리고 사회의 진짜 선배가 될 수 있는 요령도 알려줬다. “자신이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하세요. 그리고 제발 남의 사생활에 관심 좀 접어주세요.”》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다. 따르는 후배들은 또 어찌나 많게. 애들도 내 강의라면 얼마나 열심히 받아 적는데….”

50대 중반 대학교수 A 씨의 자아 정체성은 ‘참 괜찮은 사람’이다. 하지만 학생들이 기록한 강의평가서에 반영된 자신의 모습과는 차이가 많다.

A 씨는 한탄한다.

“나는 진짜 걱정돼서 가르쳐 준다. 내 아들 같아서 관심을 가진 것이고. 그런데 그걸 다르게 받아들이니…. 그럼 내가 입을 닫을 수밖에 없는 건지.”

하지만 강의평가서에는 학생들이 미처 드러내지 않은 속내가 담겨 있다.

“옛날 제자들 대기업 취업한 이야기는 그만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요즘에는 정말 듣기 괴롭습니다.”

“상담 때 사는 동네는 안 물어보셨으면 합니다. ‘도움도 안 되는 아르바이트 왜 하냐’고 하셨지만 주차 알바 구하기도 하늘의 별 따기입니다.”


○ 작은 차이가 불러온 갈등

A 씨처럼 나이 때문에 또는 직장 내 지위 때문에 무조건 비뚤어진 시선을 받는 경우가 있다. 청년의 화법이 너무 직설적이다 보니 윗세대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것이다.

“뭐가 문제라는 건지 모르겠다. 옛날 학생들 취직 잘됐다는 거야 팩트고, 진로를 잡아주려면 이런저런 개인 형편부터 잘 챙겨줘야 하잖아.”

말하는 A 씨도, 듣는 우리도 답답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물었다. “도대체 꼰대란 무엇인가?” 취업포털 ‘잡코리아×알바몬’이 함께했다. 설문에 응한 청년 2020명(만 15∼34세)의 답변을 통해 상황별로 비교해봤다.


#1. 퇴근길 저녁을 사주겠다는 사수. 식당에서 첫 숟가락을 들면서 “막내가 좋을 때야. 일도 배우고 밥도 술도 얻어먹잖아. 물론 꼭 선배가 후배 사줘야 한다는 것도 구식이긴 하지만.”

실제로 직장인 사이에 흔하게 있는 일이다. 아끼는 후배에게 충분히 던질 수 있는 농담이다. 그러나 요즘 젊은 세대는 이런 화법을 불편해한다. 속내는 이렇다. ‘사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농담이라도 기분 나쁩니다.’

#2. 학교 앞에서 택시를 탔는데 기사가 전공을 묻는다. 댄스스포츠라고 답하니 “그런 건 운동이 안 되는데. 매일 달리고 무거운 것도 좀 들고 해야 효과가 있지. 내가 마라톤을 해보니까 뛰는 게 최고야.”

청년들 중에는 학교나 직장 말고 대중교통이나 거리에서 불편한 상황을 맞닥뜨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밤늦은 시간 택시 기사의 과도한 충고도 마찬가지. 이럴 때 청년들은 ‘택시 타면 또 기사님 같은 사람 만날까봐 다음부턴 집에 달려가야겠어요’라고 푸념한다.

#3. 단골 체인점의 신메뉴가 맛있어서 페이스북에 글과 사진을 올렸다. 그런데 모르는 사람이 ‘여기 갑질 논란 있었어요. 이제 우리 먹지 말아요∼’라는 댓글을 남겼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상대적으로 젊은층 사이에서 갈등이 많다. 소비 기준이나 윤리 잣대는 저마다 다르고 개인의 취향을 존중해야 하는데 굳이 일일이 댓글까지 달면서 모르는 사람의 일상에 개입하는 것이다.



○ 배려 없는 ‘육하원칙’이 문제


설문에 응한 청년들이 꼽은 특징은 △잦은 훈수나 충고(28.2%) △개인사에 대한 오지랖과 사생활 침해(20.0%) △‘라떼 이즈 홀스(나 때는 말이야)’ 식의 옛날 얘기와 자랑(18.4%)이었다.

A 씨는 이렇게 항변한다. “그래서 나는 훈수가 아니라 조언을 하지. 뭔가 물어보는 이유는 오지랖이 아니라 관심이야. 옛날 얘기도 도움 될 만한 것만 골라서 한다고.”

이른바 대화에 다음과 같은 ‘육하원칙’이 반영됐다면 느낌이 달라진다. 바로 What(네가 뭘 알겠니?), When(나 때는 말이야), Why(네가 왜?), How(어떻게 감히), Who(내가 누군지 알아?), Where(여기가 어디라고). 청년들에게 이 중에서도 특히 어떤 말이 싫은지 묻자(복수 응답 가능) What(1010명)과 When(916명)을 꼽았다.

청년들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육하원칙을 한 문장에 담았다 “아무래도 입사 1년 차 때 정시퇴근을 자주 하면 평판이 안 좋더라. 나도 신입 때 내 뒷담화가 도는 줄 몰랐어. 그런데 선배가 되니 눈치껏 알아서 야근하는 애들이 예쁜 게 인지상정이더라. 너는 미혼인데 굳이 날마다 일찍 갈 일도 없잖아. 나도 어릴 때 이런 말 해주는 선배가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 좋은 선배와 상사가 되려면

청년들은 일부 기성세대가 보여준 배려 없는 조언이나 충고의 원인이 지위(58.5%)와 나이(56.5%) 때문이라고 봤다. 하지만 ‘타고난 성향’(40.4%)도 무시할 수 없다는 의견도 있었다. 그래서 최근에는 나이와 상관없이 비슷한 말이나 행동을 보이는 청년들을 꼬집는 사람도 있다. 고작 1, 2년 차이의 학교 선배, 군대 선임, 직장 상사가 되는 경우도 많다.

이제 A 씨가 물었다.

“이제 좀 알겠다. 그럼 어떻게 하면 될까?”

이번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좋은 선배 또는 상사가 되는 방법은 그리 어렵지 않다. 무엇보다 자신이 틀릴 수 있다는 걸 인정(43.4%)하는 게 기본이자 출발이다. 다른 사람의 사생활에 관심 좀 끄고(19.6%) 대신 그 관심을 나에게 쏟자. 조언은 상대가 요청할 때만(12.3%)!

▼ “적극 대응” 3%뿐 … 싫은티 못내고 속앓이 ▼

소통 방식의 차이가 불러온 갈등은 사회 곳곳에서 나타난다. 특히 청년들은 일상생활 곳곳에서 비뚤어진 관습이나 고정관념에 가로막혀 어려움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동아일보가 취업 포털 ‘잡코리아×알바몬’과 함께 청년 202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청년들은 ‘고객’(30.2%) ‘직장상사’(24.7%) ‘선생님’(24.3%) 순으로 이른바 잘못된 관행을 자주 경험한다고 답했다. 이는 10대 후반∼20대 초반의 청년들이 아르바이트 현장에서 이른바 ‘진상 고객’을 만나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나이가 어려서,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청년들에게 아무 말이나 쉽게 던지는 고객이 많다는 것이다. 소비자 갑질 문제가 끊이지 않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반면 가족(2.4%)이나 친척(3.8%)이라는 답변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구체적으로는 본인 나름의 잣대와 경험이 무조건 맞다고 생각하고 이를 강요하는 사람, ‘적당히’를 모르는 사람, 행동하지 않으면서 남에게 행동하도록 지시하는 사람 등을 적었다. 장소는 택시와 지하철, 상업시설 등(31.9%)이 가장 많았다. 지하철 일반석에 있는 청년에게 자리 내놓으라고 윽박지르거나, 다짜고짜 반말을 하며 옷차림을 지적하는 경우다. 직장(29.8%)과 학교(22.1%)가 그 뒤를 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청년은 이런 상황에서도 별다른 대응을 하지 못한다고 밝혔다. ‘가급적 무시한다’(56.5%) ‘아무 생각 없이 당하기만 한다’(21.5%) 같은 답변이 많았다. 목소리를 높여 적극적으로 대응한다는 대답은 3.0%에 그쳤다. 제대로 티를 내지도 못한 채 속앓이를 하면서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청년도 있었다.

무조건 악평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런 형태의 말과 행동이 너무 힘들지만 결국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걸 알기 때문에 참고 견딘다는 답변도 나왔다. “훈수, 충고, 관심이 지나치면 해롭지만 적당하면 좋은 양념이 된다”는 것이다.

※당신이 만난 꼰대에 관한 경험담을 동아일보 특별취재팀 이메일(kkondae@donga.com)로 보내주세요. 꼰대들에게 전하고 싶은 건의, 부탁, 제언 등도 좋습니다. 여러분의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특별취재팀(가나다순)

김소영 김수연 남건우 신규진 유성열 이윤태 조윤경 한성희 기자
#꼰대#소통방식#훈수#사생활 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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