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 “청와대에 소송상황 전달, 임종헌과 공모로 보기 어려워”
보고서 무단반출 혐의도 무죄… 양승태 판결엔 영향 작을 듯
사법행정권 남용에 연루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54)에게 1심 법원이 무죄를 선고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과 관련해 기소된 전·현직 법관 14명 중 가장 먼저 나온 법원의 판결이다.
유 전 연구관은 재판장이 무죄를 선고한 직후 이 판결이 공시되기를 원하는지 묻자 “공시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검찰은 “법원이 충분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관행이었다거나 범의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며 항소할 뜻을 밝혔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8부(부장판사 박남천)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와 공무상비밀누설 등 6개 혐의로 기소된 유 전 연구관에게 13일 무죄를 선고했다. 유 전 연구관은 2016년 대법원에서 근무할 때 임종헌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61·수감 중)과 공모해 박근혜 전 대통령의 ‘비선 의료진’으로 알려진 김영재 원장 부부 관련 특허소송의 진행 상황을 청와대에 전달했다는 의심을 받아왔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검찰이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피고인이 소송 관련 문건을 임 전 차장에게 전달했다거나 임 전 차장이 문건을 청와대 등 외부에 제공하는 과정에 공모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임 전 차장이 검찰 조사 때와 달리 법정에서 “유 전 연구관에게 이 특허소송 관련 보고서를 받은 기억이 조금도 없다”고 진술한 점, 당시 청와대 법무비서관도 “이 문건 형식이 독특해서 봤다면 기억을 못 할 리가 없어서 단순히 기억이 없는 게 아니라 받아보지 않았을 것”이라고 법정에서 말한 점이 고려됐다.
유 전 연구관이 퇴직하면서 대법원이 심리한 소송 관련 연구보고서를 무단으로 반출한 혐의(공공기록물관리법,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에 대해서도 무죄가 선고됐다. 재판부는 “해당 보고서는 재판 업무 보조를 위한 연구보고서에 불과해 공공기록물이라고 보기 어렵고, 그 내용 중에 개인정보가 일부 포함돼 있다고 해서 피고인에게 개인정보를 유출할 고의가 있었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유 전 연구관이 대법원에서 심리하던 사건을 퇴임 후 수임한 혐의(변호사법 위반)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죄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퇴임 전 유 전 연구관이 직접 다룬 사건이 아니라는 것이다. 재판부는 검찰이 수사 과정에서 피의사실을 공표했고, 검찰 출석 시 포토라인에 서게 해 인격권을 침해당했다는 유 전 연구관의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유 전 연구관에게 무죄를 선고한 재판부는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로 기소된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 고영한 전 대법관 사건도 심리하고 있다. 하지만 유 전 연구관은 양 전 대법원장 등과는 공범 관계가 아니어서 이들의 재판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판사 출신으로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처음 폭로했던 이탄희 변호사(42)는 유 전 연구관에게 무죄가 선고된 직후 페이스북에 “사법농단의 본질은 헌법 위반이고 법관의 직업윤리 위반이다. 형사사건이 이 사건의 본질이 아니다”라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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