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기내에서 소중한 목숨 구한 어벤저스들[떴다떴다 변비행]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월 25일 12시 00분


지난 9일 김포에서 출발해 제주로 향하던 이스타항공 ZE211편 항공기가 이륙 10여분 만에 갑자기 김포로 회항하기 시작했습니다. 가족들과 제주로 여행을 가던 40대 김 모 씨가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졌기 때문입니다. 김 씨를 발견한 옆 승객이 곧 바로 승무원에게 알렸습니다. 승객 몇 명이 생각보다 심각한 상황임을 인지하고 곧바로 환자에게 달려갔습니다. 승무원에게 신분을 확인 받고는 응급조치에 동참했습니다.

보통 기내에서 위급한 환자가 발생하면, 기내 방송으로 의사나 전문가를 찾곤 합니다. 하지만 이날은 그런 방송을 하기도 전에 영웅들이 자진해서 환자를 돕기 시작했습니다. 환자는 의식이 없었습니다. 자동제세동기(AED)를 썼고, 교대로 심폐소생술을 실시했습니다. 20분의 시간이 흘렀지만 김 씨의 호흡과 맥박은 가까스로 유지될 뿐이었습니다. 하늘이 도왔던 것일까요? 자발적으로 응급조치에 나선 승객들은 간호사와 소방관, 응급처치 교육을 꾸준히 받아온 현직 교사 등이었습니다.

환자는 피를 토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영웅들은 인공호흡을 해가며 환자를 살리는데 집중했습니다. 김 씨가 의식을 잃은 지 약 20분 뒤, 항공기는 김포공항에 착륙했습니다. 김 씨는 곧 바로 병원으로 이송됐습니다. 김 씨는 4일 뒤인 13일 기적적으로 의식을 회복했습니다. 현재 안정을 되찾아가고 있습니다. 빠른 응급조치가 없었다면 뇌 손상 등 더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었던 상황이었습니다. 환자분의 가족들은 가장을 구해준 영웅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습니다. 김 씨의 가족들은 “아이 방학을 맞아 제주도를 가고 있었는데, 아빠가 갑자기 쓰러졌을 때 영웅들의 도움으로 기적적으로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남편을 살리기 위해 영웅들이 있었던 것만 같다”며 “빠른 회항을 결정해준 기장과 승무원, 이를 허락해준 기내 승객들, 무엇보다 땀을 뻘뻘 흘리며 응급처치에 나선 영웅들에게 너무 감사하다”고 말했습니다. 한 환자 가족에 따르면 사고 당일 환자의 운세가 “멀리서 귀인을 만난다”였다고 합니다.

이스타항공은 한 때 애매한 상황에 처하기도 했습니다. 환자 가족들은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어 했지만, 영웅들의 개인 정보를 당사자 허락 없이 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본보도 이스타항공을 통해 영웅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강원소방 철원소방서 소속 최우영 소방관(47)과 구재모 간호사(32), 송일엽 제주은행 직원(30), 신명훈 서울 상일여고 교사(38)가 그날의 영웅들입니다. 송일엽 씨는 환자를 가장 먼저 발견해 번쩍 들어 응급조치를 취할 수 있게 했습니다. 원래 이 비행기를 타려던 것이 아니었는데 대기를 하다가 우연히 ZE211편에 탑승하게 됐다고 합니다. 최우영 소방관은 전화를 받자마자 승객의 건강부터 물었습니다. 최 소방관은 “소방관으로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당시에 경황이 없어서 어떤 분들이 계셨는지도 몰랐는데, 너무 잘 조치를 하시더라. (간호사, 선생님이었다는 말을 듣고서는) 어쩐지 너무 잘 조치를 하시더라”며 “환자가 건강했으면 하는 마음에 기도까지 했는데 건강하다니 너무 다행”이라고 말했습니다.

신명훈 선생님도 환자 상태부터 물었습니다. 신 선생님은 “응급조치 교육을 매년 받았다”며 “당시에 너무 놀라 있는 환자분의 아들을 보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구재모 간호사도 “환자가 건강하다니 너무 다행이다. 다른 분들이 조치를 너무 잘 해줘서 잘 협력할 수 있었다”고 회상했습니다. 해당 항공편 이태우 기장은 영웅분들께 드릴 감사 메시지를 손수 썼습니다. 하지만, 이 기장은 메시지를 영웅들께 직접 전달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사연을 알아보니 기장이 탑승 고객 정보를 알아내서 메시지를 보낸 건 고객 정보 보호 규정에 어긋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기사로나마 이 기장의 메시지 일부를 공개합니다. “일찍 연락을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환자분이 의식을 잃은 후 초기 조치가 너무 잘 됐고, 특히 뇌 손상은 거의 없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기내에서 도움을 주신 영웅분들께 너무도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최초 발견부터 구급 조치까지 어쩌면 환자분께서 정말 운이 좋으셨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시 한번 베풀어 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제 비행기에서 목숨을 잃었을 수도 있었던 승객 한분의 생명을 구하신 영웅 분들께 마음 깊은 감사를 전 합니다”

이스타항공은 영웅분들께 감사의 의미로 항공권을 제공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합니다. 마지막까지 교육 받은대로 빠르게 번갈아가며 환자 조치를 하고, 끝까지 나머지 승객들의 불편함을 초소화하며 환자 이송까지 마친 객실 및 운항 승무원들에게도 박수를 보냅니다. 현재 환자는 일반실에서 회복중이라고 합니다.

기내에서 응급상황은 종종 발생합니다. 승무원들이 재빠르게 응급 처치를 진행하고, 기장에게 사실을 알려 회항을 결정할 수 있었던 것도 무수히 많은 안전 교육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무엇 보다 1초가 급한 상황에서도 잘 협조해주신 승객 여러분과 모든 영웅들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변종국기자 bj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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