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의 국내 첫 ‘사람 간 감염’(2차 감염)이 발생하자 의료계에서는 예견된 상황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우한 폐렴으로 처음 확진된 1번 환자(35·중국인 여성)를 제외하면 2, 3, 4번 환자 모두 검역을 통과해 입국했다. 2번 환자는 입국 당시 발열 증상이 있어 능동감시 대상자로 분류됐지만 3번과 4번 환자는 무증상으로 입국해 증상이 나타날 때까지 지역사회에 노출됐다. 특히 3번 환자는 증상이 나타난 뒤에도 사흘간 서울·경기 일대를 돌아다녔다.
2차 감염 발생은 중국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시를 다녀오지 않아도 우한 폐렴에 걸릴 수 있다는 뜻이다. 더욱이 국내에서 하루 동안 2명의 확진 환자가 나온 것도 처음이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1, 2주 사이에 확진 환자가 계속 추가로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 예견된 2차 감염, 진짜 ‘경계’ 수준
6번 환자는 3번 환자(54)와 함께 식사를 한 지인이다. 능동감시를 받던 중 검사 결과가 양성으로 나와 30일 서울대병원에 격리됐다. 아직 증상은 경미한 것으로 알려졌다. 질병관리본부(질본)는 환자의 정확한 이동경로를 확인하기 위해 역학조사를 진행 중이다. 보건당국은 설 연휴 때 6번 환자가 지방에서 올라온 가족과 만났는지 여부를 조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보건당국은 또 22일 서울 강남구 한일관에서 3, 6번 환자와 함께 식사한 또 다른 50대 지인의 감염 여부도 검사 중이다. 2차 감염자가 추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앞서 26일 확진된 3번 환자는 다음 날 이동경로가 공개된 이래 ‘슈퍼 전파자’(감염병을 널리 퍼뜨리는 환자) 가능성이 제기됐다. 그는 지인과의 식사 직전인 22일 오후 1시경 증상이 나타났다. 그 뒤에도 서울 강남구 성형외과와 호텔, 한강변 편의점, 강남구 역삼동과 대치동 일대 음식점 등 최소 6곳 이상을 방문했다. 무증상이던 기간까지 합하면 무려 닷새 동안 지역사회에 노출됐다. 22일 이후 사흘간 그와 접촉한 사람만 해도 95명에 이른다. 이 중 함께 식사를 하거나 투숙하는 등 밀접하게 접촉한 사람도 15명이다.
김남중 서울대병원 내과학 교수는 “지금까지는 중국에 다녀온 사람만 찾아내 검사에 힘쓰면 됐는데 이제 방역이 훨씬 힘들어졌다”고 말했다. 최원석 고려대 안산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보통 감염병 대응 시 해외 유입 환자만 발생했을 때는 ‘주의’ 단계라 볼 수 있고 국내 2차 감염 환자가 생기면 ‘경계’ 단계로 본다”며 “우리는 이제 진정한 경계 단계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고 우려를 전했다. 앞서 질본은 27일 감염병 위기 경보 수준을 경계 단계로 상향했다.
정부의 늑장 대응이 2차 감염을 불렀다는 비판도 나온다. 정부는 28일에야 감염병 잠복기간 내인 13∼26일 우한시에서 들어온 내·외국인을 전수 조사하기로 했다. 잠복기 중 입국해 검역을 무사 통과한 3번과 4번 환자처럼 ‘숨은 환자’를 찾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미 3번 환자처럼 지역사회를 활보한 이가 있을 수 있다.
정부의 기준이나 발표 번복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질본은 29일 3번 환자의 접촉자 수를 기존 74명에서 95명으로 정정했다. 추가 조사로 환자의 증상 발현 시각이 6시간 당겨지면서 21명이 추가된 것. 이들 중 감염자가 있다면 최대 일주일간 지역사회에 노출된 셈이다. 김우주 고려대 구로병원 교수는 “2차 감염자는 일본, 독일, 대만에서도 다 나왔고 어차피 (국내 2차 감염 발생은) 시간 문제였다”며 “확진자가 나오면 증상 전 동선도 다 확인해 접촉자를 찾는 등 방역조치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 전염력 예상보다 강할 수도
3번 환자의 증상이 경미했던 점에 비춰 볼 때 우한 폐렴의 전염력이 예상보다 훨씬 강하지 않느냐는 우려도 나온다. 질본은 3번 환자의 증상이 미열과 몸살기에 불과했고 호흡기 증상은 없었다고 밝혔다. 3번 환자도 30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자진 신고한 25일 전까지는 열과 기침, 가래 증상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바이러스 감염병은 바이러스가 체내에서 충분히 증폭해야 다른 사람에게 전염될 수 있다. 증상이 나타나야 다른 사람에게 전염될 수 있다는 뜻이다. 호흡기 증상이 없거나 경미한데도 다른 사람을 감염시켰다면 전염력이 무척 강하다는 이야기가 된다.
하지만 과도하게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고 전문가들은 당부했다. 김남중 교수는 “증상이 없는 잠복기의 경우 감염력이 거의 무시할 만한 수준으로 본다”며 “환자의 동선을 파악해 방역하고 있는 만큼 불필요한 공포를 조장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