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역학조사관 A 씨는 보건환경연구원 관계자로부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신종 코로나) 의심환자의 1차 검사(판코로나바이러스 검사) 결과를 전달받았다. ‘미결정’이란 의심환자가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7종) 중 하나에 걸린 것은 맞지만, 아직 신종 코로나로 확신할 수는 없다는 뜻.
질병관리본부(질본)의 2차 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A 씨는 보호자에게 전화해 환자의 동선을 미리 파악했다. 의료기록도 샅샅이 조사했다. 그는 “혹시나 모를 확진 판정에 대비해 미결정 통보가 나오는 즉시 사전조사를 진행한다”고 말했다.
역학조사관은 감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일선 현장에서 방역 업무를 총괄하는 전문가다. 이들은 감염증 확진환자가 어디에서 얼마나 오래 체류했고 누구를 만났는지 등을 조사한다. 이를 토대로 전염 가능성이 있는 접촉자를 찾아내 관리한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확인된 접촉자 1318명 가운데 5명이 확진환자로 파악됐다. 역학조사관이 이들을 접촉자로 관리하지 않았다면 방역망에서 완전히 놓칠 수도 있었던 셈이다.
1차 검사 다음 날 질본은 의심환자가 확진 판정을 받았다고 공식 발표했다. 질본 소속 방역관과 역학조사관, 환자 발생지역 보건소 관계자들로 구성된 조사팀이 3시간 만에 환자 거주지역으로 급파됐다. 보호자 진술을 토대로 환자의 카드결제 명세, 스마트폰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기록을 대조하며 시간대별 동선을 파악했다. 환자 방문이 확인된 장소에는 바로 소독 조치를 하고 폐쇄회로(CC)TV 유무를 확인했다. 첫날 조사는 다음 날 오전 3시까지 이어졌다.
역학조사 업무에서 관건은 환자와 접촉한 사람들을 찾아내는 것이다. 병원이나 식당에 CCTV가 있어도 화면 속 인물을 뚜렷이 구별해 내기는 쉽지 않다. 이때 지역 사업장 주인들이 많은 도움이 된다. A 씨는 “지방 도시에서 사업장 주인들은 주민들과 안면이 있기 마련”이라며 “이분들이 CCTV를 보고 환자가 나오는 장면을 일일이 짚어줘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보건당국은 환자와 2m 이내 거리에서 대화하면 접촉자로 분류한다. 이에 따라 CCTV 분석에서 중요한 것은 △환자가 마스크를 썼는지 △누군가와 대화를 했는지 △기침을 했는지 여부다. 식당에서 환자에게 주문을 받거나 결제를 하는 등 직접 대화를 한 사람은 요주의 인물이 된다. 환자가 CCTV상에서 입을 벌릴 때마다 하품인지 혹은 기침인지 분석해야 하는 상황도 발생한다. A 씨 등 조사팀은 여럿이 함께 CCTV를 판독했다. 이를 바탕으로 질본이 최종 접촉자 수를 언론에 공개했다.
역학조사팀이 꾸려져 1차로 접촉자 분류를 마치는 데 걸리는 시간은 꼬박 하루. 이 시간 동안 역학조사팀은 쪽잠을 자며 조사에 매진한다. 동선을 빠르게 파악해야 추가 감염 가능성을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1차 파악이 끝난 뒤에도 조사를 계속하며 추가 접촉자를 찾아낸다. 접촉자 리스트가 파악되면 이들의 증상 여부를 지속적으로 확인하는 업무에 들어간다.
현재 보건당국과 전국 지방자치단체는 신종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해 총력전을 벌이고 있다. 특히 확진환자가 발생한 지역의 담당자들은 집에도 가지 못하고 사무실에 침낭이나 방석을 깔고 잠을 청한다. 확진환자가 늘면서 질본 소속 역학조사관들도 24시간 중 약 20시간은 업무에 매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의학계에서는 신종 코로나 확진환자의 접촉자가 급격히 늘고 있어 역학조사관 충원을 서둘러야 한다고 지적한다. 4일 대한예방의학회와 한국역학회는 광역 지자체에 설립된 감염병관리지원단의 전문 인력을 민간 역학조사관으로 투입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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