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에 시달리다가 극단적 선택을 한 남성이 유서에서 ‘경찰에 폭행당했다. 꼭 처벌해 달라’는 말을 남겼지만 국가인권위원회 조사에도 폭행 사건의 전말이 드러나지 않았다.
인권위는 남편이 경찰에게 폭행을 당했다고 억울함을 토로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주장하는 부인 A씨의 진정사건에 대해 조사했지만 해당 경찰의 폭행을 입증할 증거를 발견하지 못해 사건을 기각했다고 5일 밝혔다.
A씨의 남편 B씨는 2018년 5월16일 음주운전 혐의로 현행범 체포돼 경찰서 지구대에서 수사를 받았고 이튿날 오후 술에 취해 해당 지구대를 찾아가 억울하다며 소란을 피워 유치장에 수감됐다가 석방됐다.
일주일이 지난 5월23일 B씨는 자신의 차량에서 변사체로 발견됐다. 유서에는 수감을 위해 처음 조사를 받던 경찰서에서 다른 경찰서로 이송되는 과정에서 경찰이 자신의 옷을 벗기고 몸 뒤로 수갑을 채운 상태에서 폭행을 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A씨는 남편이 우울증에 의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점은 의심하지 않았으나 유서에 경찰에게 폭행을 당했다는 내용이 있는 만큼 인권위가 이를 조사해달라고 진정했다.
인권위 조사결과, B씨는 지구대를 방문했을 때부터 속옷 차림이었으며 경찰은 B씨가 계속 소란을 피우는 것을 막기 위해 수갑을 채웠다. 더불어 지구대나 경찰서에 설치된 CC(폐쇄회로)TV에도 경찰이 B씨를 폭행하는 장면은 발견되지 않았다. 인권위는 B씨의 직장동료나 유치장에 함께 수감된 사람들도 B씨가 경찰에 폭행당했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B씨가 다른 경찰서로 이송될 때 차량에는 내부를 찍는 블랙박스가 설치되지 않아 폭행 사실이 확인되지 않았고, B씨의 사망 사건을 조사한 경찰관은 자살이 명백하다고 판단하고 유서에 기재된 동료 경찰관들의 폭행 여부를 별도로 조사하지 않았다.
이에 인권위는 “이 사건은 진정의 내용이 사실이라고 입증할 만한 객관적인 증거가 없는 경우”라며 진정을 기각했다. 다만 인권위는 경찰이 호송차량 내부에 영상녹화장비를 제대로 마련하지 않은 점은 확실히 문제가 있다고 봤다.
인권위는 경찰청장에게 “피의자 인권보호와 법집행 투명성 확보를 위해 경찰청 운용차량 내 영상녹화장비와 관련해 보유기간 등에 대한 규정을 정비하고 영상녹화장비 운영 취지를 실현할 수 있는 단계적 개선 계획을 수립해 시행하라”고 권고했다.
경찰은 2011년부터 제작돼 운용하고 있는 차량에는 블랙박스를 의무적으로 장착하고 있지만 그 이전에 제작된 차량에는 블랙박스가 장착돼 있지 않다. 인권위가 경찰청에서 지난해 9월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경찰이 운용하는 호송차량 246대 가운데 69대에는 내부 블랙박스가 설치되지 않았다.
경찰청의 영상정보처리기기 운영·관리방침에는 블랙박스의 개인영상정보 보유기간에 대한 규정이 없고 지방경찰청마다 보유기간도 1시간에서 30일로 천차만별로 나타났다.
인권위는 이번 사건 이외에도 형사호송차량 등 경찰이 운용하는 차량 내부에서 폭행을 당했다고 진정한 사건이 다수 있었으나 상당수의 사건들은 영상녹화장비 등의 부재나 영상보유기간의 도과로 피해사실의 객관적 입증이 어려워 종결됐다고 설명했다.
실제 지난 5년간 경찰청 운용차량 내부에서 폭행, 폭언, 과도한 장구 사용 등 인권침해를 당했다고 주장하며 인권위에 진정된 사건은 모두 47건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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