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청와대 선거개입 사건 공소장 비공개로 인한 논란에 “미국도 1회 공판기일이 열리면 공개된다”고 기존 입장을 고수하자, 미국법에 정통한 법조인들은 한목소리로 “기소 후 바로 공개가 원칙”이라는 반박을 내놨다.
추 장관은 지난 6일 서울 서초동 서울고검 청사에 신설된 대변인실 사무실 개소식에서 “앞으로 (공소장은) 재판 과정에서 공개될 것”이라며 “미국 법무부도 공판기일이 1회 열리면 공개가 된다”고 말했다.
법무부는 해당 입장을 고수 중이다. 이용구 법무실장은 7일 통화에서 “미국에서 공소장이 공개되는 경우는 대배심 사건에서 기소 결정된 뒤 봉인이 풀리는 경우와 (한국의) 공판준비기일”이라고 말했다. 공소장은 비공개가 원칙이고 공개가 예외라는 것이다.
이 실장은 전날 통화에서도 “기소가 됐다고 법무부가 공개해버리는 게 아니고, 그 사이 대배심 절차나 판사 앞에 불려가서 법정에 섰다거나 판사의 공개결정이 있었거나 등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법조계에선 법무부 설명이 사실과 다르다고 지적한다. 미국은 기본적으로 기소 뒤 바로 공소장 공개가 원칙이라는 것이다.
한 외국법자문사 대표는 “미국은 법원에 (사건이) 접수되는 순간 공개가 원칙”이라며 “공개하지 않으려면 법원에서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법무부가 설명한 대배심 사건에서 공소장 공개는 예외적 경우가 아니라는 게 법조계의 중론이다. 한국엔 일반 시민이 재판에 참여해 기소여부를 결정하는 대배심 제도 자체가 없어, 한국 검찰이 하는 정식기소는 사실상 대배심 사건이라는 취지다.
미국법에 정통한 한 검사는 “기소하기 전에 대배심 절차가 구성된다. 그러면 검사가 대배심단에 가서 기소 필요성을 설명하고, 기소 결정이 나면 인다이트먼트(indictment·기소)라는 문서가 법원에 접수되는데 우리 법으로 따지면 그게 기소”라며 “인다이트먼트 이전의 3가지는 기소 전 단계라 논의대상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쟁점은 ‘기소를 했는데 언제 공개하느냐’인데, 미국 법무부 홈페이지엔 대부분 인다이트먼트가 법원에 접수된 날 공소장이 공개된다”고 덧붙였다.
이 검사는 “대배심 사건에서 검사가 공소장이 공개될 경우 피의자가 도망가거나 (증거)조작 우려가 있을 때 예외적으로 비공개 요청을 한다”며 “이마저 다른 이해당사자가 법원에 공개해달라고 하면 공개된다”고 말했다.
미국의 공소장 공개가 예외적이란 법무부 주장과 달리 공개가 원칙, 비공개가 예외라는 것이다.
또 “대배심 사건은 대부분 중대사건”이라며 “미국 법무부 홈페이지에 공소장이 공개된 마약이나 조직범죄 사건과 비교해, 청와대 선거개입은 훨씬 사안이 중대하다”고도 했다.
다른 검사도 체포된 뒤 법원에 인치돼 최초 출석(first appearance)한 이후에야 공소장을 공개한다는 법무부 설명에 대해 “최초 출석은 수사단계에서의 보석심리 같은 절차”라며 정식기소와 경우가 다르다고 설명했다.
미국법에 정통한 한 판사도 이는 “경찰 단계”라며 “영장실질심사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이 판사는 “미국은 무조건 공개가 원칙”이라며 “연방법원 전자기록 공개시스템(PACER·Public Access to Court Electronic Records) 사이트에서 (소송)기록을 다 볼 수 있다”며 “그걸 위해 당사자들이 법원에 원본과 공개 버전 두 기록을 내고, 공개 버전을 내지 않을 경우 원본 공개에 동의한 것으로 간주해 원본을 올려버린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공소장 공개여부를 둘러싼 논쟁이 본질에서 벗어났다는 지적도 했다.
그는 “미국도 주마다 법이 다 다르고, 우리도 우리 법에 따라 하면 된다”며 “국회법에 자료요구권이 있는데 법무부 훈령으로 막는 건 말이 안 된다. 국회의 자료요구권은 참여정부에서 만든 것인데 현 정부가 이를 무시하는 건 말도 안 되는 태도”라고 짚었다.
법무부는 이날 오후 이와 관련한 추가 설명자료를 내고 미국 연방법무부의 공소장 전문공개 사례 중 일부는 Δ대배심재판에 의해 기소가 결정된 이후 법원에 의해 공소장 봉인이 해제된 사건 Δ피고인이 체포 뒤 법원에 소환돼 최초기일에 출석(initial appearance)한 경우 등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미국과 한국의 형사사법체계는 다르다고 하나, 한국도 당사자주의·공판중심주의를 강화하고 있고 국민참여재판을 확대하고 있어 재판절차 개시 전 여론재판 위험성을 차단할 필요성이 더욱 요구된다”며 “앞으로 공판 첫 기일에는 언론과 국회에 (공소장을) 제출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법무부는 기소 뒤 공소장 봉인이 예외적이고, 기본적으로는 공개된다는 지적에 대한 답은 내놓지 못했다. 법무부 한 관계자는 통화에서 “그런 얘기도 있더라. 그 부분은 확인을 못 했다”며 “언론이 제기한 사건은 그렇다는 것이고, 전체 통계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는 자료를 확보하지 못했다”고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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