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오후 일본 요코하마 다이코쿠(大黑) 부두에 은색 밴 1대가 들어왔다. 운전자는 차량에서 박스 12개를 내렸다. 김치, 컵라면, 치약, 칫솔, 파스 등 생필품과 약품이 가득 담겨 있었다.
이는 3일부터 요코하마항 앞바다에 정박 중인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에 묶여 있는 한국인 14명(승객 9명, 승무원 5명)을 위해 요코하마 총영사관이 준비한 구호물품이다. 이 배의 일부 탑승객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신종 코로나)에 감염된 사실이 알려진 5일 이후 한국 정부가 구호물품을 전달한 것은 처음이다.
영사관 관계자들은 선사 사무실에 박스를 내려놓고 받을 사람들의 영문 이름, 방 번호, 물품 내용 등을 꼼꼼히 적었다. 그간 영사관 측은 한국인 탑승객들과 하루 두세 차례 연락하며 이들의 건강상태를 확인하고 필요한 물품을 조사했다. 윤희찬 요코하마 총영사는 “주로 음식이나 생필품을 요청했지만 한 승객이 ‘태극기’를 넣어 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 한국인 조기 귀국 계획 없어
14명의 한국인 탑승객 거주지는 일본 9명(승객 8명, 승무원 1명), 한국 5명(승객 1명, 승무원 4명)이다. 윤 총영사는 “현재까지 건강상 문제가 있는 한국인은 없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인터넷이 연결돼 바깥 상황도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고 전했다.
배 안에는 창문이 없는 방도 있다. 다행히 한국인 승객 9명은 모두 바깥 공기를 마실 수 있는 발코니가 있는 방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승무원 5명도 객실 아래층의 창문 있는 방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 배에서 170명이 넘는 확진 환자가 속출하자 일본 안팎에서는 ‘밀폐된 크루즈선 내에 남아 있는 3500여 명을 모두 하선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잇따르고 있다. 김우주 고려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크루즈선은 완벽한 격리가 어려운 구조인데 이렇게 방치하는 것은 의학적으로 말이 안 된다”라며 “빨리 하선시켜 격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본 정부는 19일까지 선상에 격리한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해상에서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병원선 도입까지 검토하고 있다. 대규모 격리 장소 마련이 부담스럽고, 감염이 의심되는 이들을 일본 국내에 들여선 안 된다는 여론 등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이들이 하선한 상태에서 환자로 확인되면 일본 내 감염자 수로 확정되기 때문에 일본 정부가 하선을 꺼리는 것으로 의심한다.
한국 일각에서는 ‘한국인 승객과 승무원이라도 조기에 귀국시켜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을 제기한다. 다만 강형식 외교부 해외안전관리기획관은 12일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 정례 브리핑에서 “현재까지 특별한 이송에 관한 요청은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김강립 보건복지부 차관도 전날 “감염병은 발생 지역에서 치료 및 통제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했다. 아직 탑승자를 자국으로 데려올 계획을 세운 국가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 승무원에 검역관까지 감염
선상 격리가 길어지면서 크루즈선 승무원들의 감염도 늘어나고 있다. 크루즈선이 3일 요코하마항에 귀항했을 때 승객 2666명, 승무원 1045명 등 3711명이 타고 있었다. 초기에는 승무원 감염자가 거의 없었지만 12일 확진자 39명 중에는 승무원이 10명 포함됐다.
익명으로 트윗을 올린 한 승무원은 “평상시 해야 하는 일 외에 식사를 각 방에 배급하고, 확진 환자들의 하선을 도와야 한다. 너무 피곤하다”고 토로했다. 환자와의 접촉이 늘다 보니 승무원 감염도 비례해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이날 확진자 중 한 명은 방역 전문가인 검역관이다. 이에 따라 일본 내 불안감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 검역관은 크루즈선이 요코하마항 앞바다에 정박해 있던 3, 4일 승객들의 체온을 재고, 검진표를 회수했다. 당시 규정에 맞춰 마스크와 장갑을 꼈고 손 소독제를 이용했지만 감염돼 공포를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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