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설임 없이 한강 물에 뛰어들던 분”…유재국 경사, 투신자 수색중 순직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2월 16일 16시 48분


“차디찬 물에도 인명구조를 위해서라면 망설임 없이 뛰어들던 분이었습니다.”

16일 오후 1시 반경 서울 송파구 경찰병원 장례식장은 무거운 공기가 주위를 짓눌렀다.

15일 서울 마포구 가양대교 북단에서 투신한 시민을 수색하다 목숨을 잃은 고 유재국 경사(39)의 빈소가 차려졌기 때문이다. 영정 사진 속 유 경사는 여전히 앳된 모습이었다.

서울지방경찰청에 따르면 15일 오후 2시 12분경 고인은 가양대교 위에 차를 버린 채 한강으로 뛰어내린 남성을 수색하고 있었다. 당시 한강은 거센 물살에다 흙탕물로 물 속이 혼탁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유 경사는 맨몸으로 뛰어들어 물 속을 손으로 짚어가며 수색했다. 하지만 순식간에 교각 틈새에 몸이 끼이며 한강에 빠지고 말았다.

오후 2시 47분경 119수난구조대가 출동해 어렵사리 유 경사를 구조했지만 이미 한참동한 시간이 흐른 뒤였다. 심폐소생술(CPR) 조치를 취한 뒤 병원으로 이송했지만, 끝내 유 경사는 의식이 돌아오지 않았다. 함께 2인1조로 현장에서 작업했던 경찰은 “시야 확보도 어려웠고 물살도 너무 거셌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16일 유 경사의 빈소는 서울경찰청 한강경찰대 소속 경찰관 4명이 줄곧 자리를 지켰다. 위로의 인사를 전하러 온 동료들의 포옹에 말없이 눈물만 흘리는 이들도 있었다. 동료들은 유 경사가 ‘수십 명의 생명을 구한 베테랑’이라며 너무나 안타까워했다.

유 경사는 순직 직전까지 한강경찰대에서 5년간 근무해왔다. 한강경찰대 경찰 A 씨는 “현장 출동 경험이 많아서 동료들이 믿고 의지했다”며 “잠수법이나 수영법 등 자신이 배운 걸 동료와 후배들에게 가르쳐주기도 했다”고 전했다. 유 경사는 쉬는 날에도 따로 시간을 내 잠수와 수영을 배울 정도로 열정적이었다고 한다. 동료 B 씨는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겠다고 휴일에도 쉬질 않았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이날 빈소에는 유 경사 지인인 한강카약클럽 소속 김일준 씨(39)도 조문했다. 김 씨는 영정사진을 바라보며 한참동안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는 “제대로 된 영정사진 한 장 준비하지도 않은 젊은 사람이 왜 이렇게 빨리 가냐”며 울먹였다.

유 경사와 김 씨가 인연을 맺은 건 지난해 1월이다. 서울 마포구 망원한강지구에서 카약을 타던 김 씨는 한 남성의 투신을 목격했다. “물 속에 사람이 뛰어들었다”며 112에 신고하자 2분도 채 되지 않아 순찰정 한 대가 나타났다고 한다. 당시 그 배에 유 경사가 타고 있었다. 한강 물이 손에만 닿아도 피부가 벌개질 정도로 추운 날씨였지만, 유 경사는 망설임 없이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투신 남성을 극적으로 구조했다. 김 씨는 “그렇게 살신성인하는 경찰을 두 눈으로 본 건 처음이었다. 유 경사 같은 경찰 덕분에 한강도 그리 절망스러운 곳만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유 경사가 몸담던 한강경찰대는 망원, 이촌, 뚝섬, 광나루 4개 치안센터로 나뉘어 행주대교에서 강동대교까지 약 41.5㎞의 물길을 지킨다. 여기서 근무하는 경찰관들은 식사를 하다가도 무전 소리가 울리면 곧장 튀어나간다고 한다. 한강경찰대 관계자는 “한 사람의 생명이 걸린 일이라 1초도 늦으면 안 된다. 항상 초 긴장상태로 일하고 있는 곳”이라고 했다. 투신한 이들의 시신 인양도 담당한다.

2007년 8월 순경 공채로 입직한 유 경사는 서울 용산경찰서 등을 거친 뒤 한강경찰대로 전보해 해마다 수십 명씩 목숨을 구해왔다. 경찰은 순직한 유 경사를 경위로 1계급 특진 추서하고, 장례는 서울지방경찰청장으로 거행한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김태성 기자 kts5710@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