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T 수학과를 졸업한 뒤 같은 대학 전기및전자공학과 김정호 교수(Teralab)의 지도로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김민수 씨(23). 그는 그리기에 흥미를 느끼지 못해 초등학교 미술 시간에는 혼이 나기도 했다. 김 씨는 현재 어떤 대상이라도 네덜란드 출신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 같은 거장의 화풍으로 구현한다. 그동안 화가 수업이라도 받았던 걸까? 그렇지 않다. 화가의 재능을 지닌 인공지능(AI) 활용 능력을 익혔다. 김 씨는 지난달 28일 교내에서 열린 김 교수 연구실 주관의 세미나에서 ‘CycleGAN을 활용한 이미지 스타일 변환’에 대해 발표했다. 이 수업은 캠퍼스에서 진행되는 AI 활용에 대한 다양한 논의를 보여줬다. 김 씨는 이미지 변환 인공지능 프로그램인 CycleGAN을 활용해 고흐와 프랑스 출신의 화가 폴 세잔 등의 화풍으로 그려낸 세계 정상의 모습을 소개했다. 고흐의 작품 가운데 ‘별이 빛나는 밤’이나 ‘자화상’처럼 분위기별로 달리 표현해 보기도 했다. 신입생들의 사진을 고흐 화풍으로 변환해 걸어보자는 즉석 제안도 나왔다.
이날 수업은 새로운 분야에 대한 도전을 독려하는 김 교수의 요구로 이뤄졌다. 김 씨에게 AI를 활용해 그림을 한번 그려보라고 주문했다가 그 결과가 꽤 괜찮다고 판단되자 아예 발표 수업을 주문했다. 김 씨는 이미지 스타일 변환에 대한 연구 흐름과 관련 논문을 소개했다. CycleGAN은 보다 잘 알려진 GAN(생성적 적대 신경망)처럼 생성자(generator)와 감식자(discriminator)라는 두 개 신경망을 활용한다. 통상 생성자는 위폐범에, 감식자는 위폐감식전문가에 비유된다. 둘이 속이고 잡아내다 보면 실력은 점차 정교해진다. 감식자가 더 이상 진위 구분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생성자가 이미지를 구현하면(위조하면) 완벽한 변환이 이뤄진 셈이다.
김 씨는 “원저자가 논문과 코드를 공개한 CycleGAN을 활용해 교수님이 원하는 이미지를 여러 거장들의 화풍으로 변환시켰다”며 “일반인이 엑셀 프로그램을 만들거나 그 제작원리를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통상적으로 잘 이용하는 것처럼 앞으로는 누구나 이런 프로그램을 활용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씨는 AI에 흥미를 느껴 미국 스탠퍼드대의 이 분야 학습자료를 공부했고 교내에서 인공지능 개론을 수강하기도 했다.
물감과 캔버스가 있는 화가의 작업실뿐 아니라 좋은 성능의 컴퓨터와 양질의 데이터를 갖춘 공학 연구실에서도 미술 작품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미 미술시장에서 AI가 예술가 대접을 받고 있다. 2018년 10월 미국 뉴욕의 크리스티 경매에서 AI의 작품 ‘벨라미가(家)의 에드몽 벨라미’가 43만2500달러(약 4억9000만 원)에 팔렸다. 이 작품은 프랑스의 예술집단 ‘오비우스’가 AI를 활용해 그린 가상의 남성 초상화다.
김 씨는 자신의 작업은 아직 창작 수준에는 이르지는 못한 것 같다고 털어놨지만 수업의 화두는 자연스럽게 ‘AI는 창작을 할 수 있나’로 모아졌다. AI의 창작 가능성을 지지하는 김 교수는 “AI와 유전자(DNA), 인간의 창조 방식은 같다. 인간 고유의 본성이라고 생각했던 부분이 실제로는 진화기간 학습된 것이다. 인공지능도 학습을 통해 미술 음악 문학 작품을 창작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AI에 작가의 자서전과 작가수업 과정을 입력하면 보다 원초적인 차원의 창작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며 “예술가들은 이런 걸 불가능한 작업이라고 말하겠지만 구글 같은 기업이 AI 기술자를 동원하면 당장이라도 실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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