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안암병원 응급의료센터는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국내 29번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환자(82)가 다녀간 곳이다. 병원은 응급의료센터를 폐쇄하고, 29번 환자와 접촉한 의료진과 직원들에게 자가 격리 조치를 내렸다.
6일 만에 코로나19 추가 환자가 발생하면서 방역 당국에 비상이 걸렸다. 감염 경로를 알 수 없는 국내 첫 ‘지역사회 전파’ 사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중국을 제외하고 코로나19 환자 발생 국가 중 지역사회 감염이 확인된 곳은 일본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태국 베트남 대만 등 6개국이다. ○ ‘병원 내 감염’ 우려
질병관리본부(질본)에 따르면 29번 환자는 가슴 통증을 느껴 15일 낮 12시경 고려대안암병원에 내원해 다음 날 오전 1시 30분까지 머물렀다. 코로나19로 의심할 만한 정황이 전혀 없었기에 선별진료소를 거치지 않은 채 응급실 중증구역에 머물다가 내원한 지 4시간이 지나 음압병실에 격리됐다. 병원 측이 발 빠르게 대처했지만 결과적으로 4시간가량 응급실에서 노출된 셈이다.
29번 환자는 보건 당국이 가장 우려하던 시나리오로 이어질 수도 있다. 면역력이 약한 환자가 많은 병원이 바이러스에 뚫리는 경우다. 2015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유행 때 전체 환자 186명 중 172명(92.5%)이 병원에서 감염됐다. 29번 환자는 고려대안암병원 응급실 방문 전 서울 종로구 집 근처 개인의원 2곳을 방문했다.
환자와 보호자들의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일부 면회객들은 확진 환자가 다녀갔다는 소식에 발길을 돌리기도 했다. 고려대안암병원 관계자는 “당직 간호사들을 동원해 새벽에 응급실 내부를 알코올로 닦아내는 등 자체 조치를 취했다”고 밝혔다.
고령인 29번 환자의 치료 경과에도 관심이 쏠린다. 중국 이외 국가에서 코로나19로 4명이 숨졌는데 일본, 프랑스 환자 역시 모두 80대였다. 현재 29번 환자는 37.5도 정도의 미열 외에는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 지역사회 전파 가능성에 ‘비상’
정부의 방역망에서 벗어나 지역사회 전파가 시작됐다는 우려도 나온다. 기존 확진 환자 28명은 대부분 감염원이 밝혀졌다. 중국 입국자 12명, 국내 2, 3차 감염 10명, 싱가포르 등 제3국 감염 4명 등이다. 태국에서 감염된 16번 환자(43)의 딸인 18번 환자(21)와 3번 환자(54)의 지인인 28번 환자(31·여)는 질본이 감염 경로를 조사 중이다. 끝내 경로가 확인되지 않는다면 29번 환자에게 바이러스를 옮긴 ‘숨겨진 감염자’가 증상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지역사회를 돌아다니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지역사회 전파가 확인되면 방역 체계를 크게 손봐야 한다. 위기경보 단계를 최고 수준인 ‘심각’으로 격상하는 방안도 검토될 수 있다. 현재 중국과 홍콩, 마카오 등 3개국에 한정된 오염지역 지정을 지역사회 전파가 일어난 일본, 싱가포르 등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질본은 원인 불명의 폐렴 환자를 대상으로 코로나19 진단검사를 확대하는 등 지역사회에 퍼진 ‘숨은 환자’를 찾아낼 계획이다. 또 계절성 독감처럼 현행 인플루엔자 감시 체계에 코로나19를 포함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인플루엔자 감시 체계가 적용되면 1년 내내 개인 의원 200여 곳이 인플루엔자 의심 사례를 보고하게 된다. 바이러스가 한 번에 박멸되지 않고 토착화될 가능성을 감안한 조치다.
한편 16일 오후 베트남 하노이에서 아시아나항공 편으로 입국한 한국인 남성 A 씨(44)가 인천공항 검역 과정에서 의심 환자로 판단돼 인천 길병원으로 이송됐다. 확진 여부는 17일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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