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전 9시 50분경 경기 수원시 아주대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에 비상이 걸렸다. 의식불명으로 실려 온 환자 A 씨가 엑스레이 검사에서 폐렴 진단을 받았기 때문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의심한 의료진은 즉시 센터를 폐쇄하고 방역에 돌입했다. 이 센터는 인구 979만 명인 경기남부권역 권역응급의료센터 5곳 가운데 하나다. 하루 평균 응급환자 300명 이상을 진료한다.
폐쇄 여파는 작지 않았다. 응급환자들은 아주대병원 대신 15~20㎞ 떨어진 다른 병원 응급실로 이송되는 등 혼란을 컸다. 같은 병원 권역외상센터도 덩달아 비상이 걸렸다. 외상센터에 중증외상환자가 가득 차도 권역응급의료센터의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다행히 A 씨는 오후 3시 50분경 코로나19 음성으로 확진됐다. 하지만 약 6시간동안 지역 응급의료 체계에 커다란 구멍이 생겨버렸다. 민영기 아주대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장은 “타격이 엄청나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응급의료가 마비될 수 있다”고 했다.
●서울에서 유일한 중증외상센터도 문 닫아
대구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방문해 문을 닫은 응급실은 20일 오후 3시 현재 10곳에 이른다. 이는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는 현상이다. 확진자가 아닌 의심 환자만 방문해도 응급실은 짧게는 수 시간, 길게는 사흘 이상 폐쇄한다. 확진자와 밀접 접촉한 의료진은 14일씩 격리된다. 응급의료 공백이 우려될 수밖에 없다.
같은 날 오전 9시 반경 경기 고양시 동국대 일산병원 응급의료센터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1시간 전 호흡곤란으로 실려 왔다 숨진 남성이 컴퓨터단층촬영(CT) 검사에서 폐렴 진단을 받았다. 환자와 접촉했던 의료진 20명은 코로나19 음성 판정이 나온 오후 2시까지 응급실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예정돼있던 수술과 외래, 회진을 모두 취소해야 했다.
서울에서 유일한 중증외상센터인 국립중앙의료원 외상센터도 18일 소방당국에 ‘환자 수용 불가(바이패스)’를 통보했다. 국립중앙의료원이 코로나19 확진자 치료와 선별진료 등에 핵심 역할을 맡아 외상 환자를 돌볼 인력이 부족해졌기 때문이다. 센터가 진료하는 외상 환자는 하루 평균 10명 안팎. 이곳에 오지 못하는 외상환자는 경기 의정부시나 수원시 권역외상센터까지 가야 한다. 모두 국립중앙의료원에서 35㎞ 이상 떨어져있다. 국립중앙의료원 상공은 비행제한구역이라 닥터헬기로 환자를 옮길 수도 없다.
●의료진 격리는 더욱 치명적
코로나19 확진자와 접촉했던 의료진 격리는 응급실 폐쇄보다 더욱 심각한 파장을 낳는다. 일손이 부족한 응급실에서 의료진이 14일(자가 격리 기간)이나 손발이 묶이면 ‘개점휴업’이나 다름없는 상태가 된다. 코로나19 29번 환자가 다녀간 고려대 안암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는 16일 폐쇄했다가 19일 다시 문을 열었다. 하지만 응급의학과 교수 2명과 전공의(레지던트) 2명, 수련의(인턴) 2명, 간호사 15명 등 모두 45명이 여전히 자가 격리 상태다. 병원 관계자는 “응급실 인력의 1/3이나 공백이 생겼다. 다른 부서 의료진이 메우고 있지만 심각하다”고 했다.
18일 응급실을 폐쇄한 경북대병원은 응급실 재가동일도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서둘러 소독을 마쳐도 언제 문을 열지 미지수다. 호흡기내과 의료진 등을 포함해 현재 37명의 의료진이 2주 자가 격리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의료계는 서둘러 ‘방역 전달체계’를 재정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한의사협회는 성명서에서 “보건소는 일반진료 업무를 중단하고 코로나19 선별진료를 전담해 다른 응급의료기관이 폐쇄되는 경우를 최소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한병원협회도 “선별진료소로 의사들이 차출돼 급성 심근경색처럼 ‘골든타임’을 다투는 중증응급질환마저 공백이 생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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