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량 확인도 않고 “공급”… 시민 분통 터지게 한 ‘마스크 행정’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2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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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확산 비상]26일 부실대책 발표에 시민들 혼란

“마스크 샀어요” 26일 오후 서울 용산구의 한 대형마트에서 한 외국인이 마스크를 구매한 뒤 한 손을 번쩍 치켜들고 있다. 이날 이 마트에는 마스크를 사려는 시민들이 몰려 북새통을 이뤘다. 마스크 재고가 부족해 1인당 한정 수량으로 선착순 판매한다는 안내가 적혀 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마스크 샀어요” 26일 오후 서울 용산구의 한 대형마트에서 한 외국인이 마스크를 구매한 뒤 한 손을 번쩍 치켜들고 있다. 이날 이 마트에는 마스크를 사려는 시민들이 몰려 북새통을 이뤘다. 마스크 재고가 부족해 1인당 한정 수량으로 선착순 판매한다는 안내가 적혀 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정부가 마스크 공급을 늘리는 긴급 대책을 26일 내놨지만 이날도 각종 대형마트와 온라인쇼핑몰 등에서는 마스크를 구하려는 시민들의 극심한 혼란이 이어졌다. 마스크 공급 대책을 놓고 여러 정부 부처가 시시각각 다른 발표를 내놓으면서 혼선을 빚었고 우체국쇼핑 등 마스크 판매처로 정부가 발표한 기관들의 홈페이지는 마스크 주문을 하려는 사람들로 접속이 마비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마스크 생산·유통조차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한국 행정의 민낯이 드러났다는 질타가 이어졌다.

○ 판매처들 “물량 확보 못해 3월에야 판매 가능”


정부는 이날 공적으로 확보한 마스크 일일 500만 장을 대구경북 지역과 의료진에게 우선 공급하고 남은 350만 장이 시중에 풀릴 것이라고 발표했다. 전국 2만4000여 개 약국에 하루 240만 장을 공급하고 약국이 적은 읍면지역에서는 우체국과 농협 하나로마트를 통해 일일 110만 장을 푼다는 내용이다. 이르면 27일 오후부터 구매가 가능하고 28일부터 본격적으로 판매될 것이란 설명도 덧붙였다. 정부는 전날인 25일에는 ‘26일 0시부터’ 대책을 시행한다고 했었다.

판매처로 지정된 우정사업본부와 농협은 물량 확보를 하지 못해 다음 달에야 판매를 할 수 있다고 밝혀 혼선이 빚어졌다. 농협 측은 “제조업체를 통해 계약 물량을 확보하고 있는데 이르면 3월 초는 돼야 온라인 농협몰과 하나로마트에서 판매가 가능할 것 같다”고 했다.

우정사업본부 측도 “3월 2일 오후부터 대구와 경북 청도, 그 밖의 읍면 지역 우체국 창구에서 판매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우정사업본부는 온라인 판매처인 우체국쇼핑 판매에 대해서도 3월부터 가능하다고 홈페이지를 통해 공지했다가 미정이라고 말을 바꿨다. 약국에서도 27일 오후부터 마스크를 살 수 있을지 불확실한 상황이다.

정부는 소비자 1명당 구입할 수 있는 마스크 수를 5개로 제한하겠다고 했지만 권고사항일 뿐 이를 통제할 방안이 없다. 공적으로 판매될 마스크 가격에 대해서도 “생산원가와 배송비가 포함되는 합리적인 수준으로 권고할 예정”이라는 원론적인 답변만 내놨다.

이날 우체국쇼핑 홈페이지는 접속이 몰려 한때 마비되기도 했다. 전날 우체국과 농협 등을 통해 마스크를 팔겠다는 정부 발표를 보고 마스크를 사려는 사람들이 몰렸기 때문이다. 마스크를 사려고 우체국과 농협 하나로마트, 대형마트 등을 찾은 사람들도 대부분 허탈하게 발길을 돌려야 했다. 이날 하나로마트를 찾았다가 빈손으로 돌아온 한 누리꾼은 “마트 직원이 3월 초에야 마스크가 들어올 거라는데 준비도 없이 무턱대고 정부가 발표부터 한 것 아니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26일 오후 서울 중구 롯데마트 서울역점은 성인용 KF94 마스크 1055개, 유아용 KF94 마스크 950개를 들여놓았지만 삽시간에 동이 났다.

○ 생산량, 판매처, 사용법 두고 엇박자까지


마스크 수급에 대한 정부의 행정은 하루 종일 오락가락 행보를 보였다. 이날 오전 정부 부처 합동 마스크 수급 안정 회의에서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은 “이번 조치로 일일 마스크 생산량 약 1200만 장 중 50%가 공적 물량으로 확보, 공급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약 1시간 뒤 열린 식품의약품안전처 브리핑에서는 일일 생산량이 1000만 장으로 줄었고 공적 공급 물량도 500만 장으로 바뀌었다. 기재부는 다시 보도자료를 배포해 식약처의 발표 물량으로 수치를 수정했다.

판매처에 대해서도 기재부는 약국과 편의점이 포함된다고 했는데 식약처는 편의점은 포함되지 않는다고 정정했다. 식약처 관계자는 “편의점도 대상으로 검토했지만 공공성이 떨어진다는 점을 고려해 약국으로 한정했다”고 했다. 일부 소비자는 약국보다 편의점이 접근성이 더 높다며 불만을 표했다. 경북 상주시에 사는 김모 씨(28)는 “시골에서는 우체국과 하나로마트에 가려면 차로 이동해야 하는데 근처에서 쉽게 들를 수 있는 편의점을 빠뜨린 점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마스크 생산과 유통, 관리에는 중소벤처기업부, 식약처, 법무부, 관세청, 공정거래위원회, 국세청 등 정부 주요 부처가 관여하고 기재부가 관련 태스크포스를 이끌고 있다. 그럼에도 마스크가 어떻게 생산돼 유통되는지 아직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이번 대책 자체가 뒷북 행정이라는 지적도 있다. 지난달 말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나온 뒤부터 마스크 가격이 오르고 품귀 현상이 벌어졌는데 한 달이 지나서야 수출을 제한하고 공급 물량을 확보할 방안을 내놨다는 것이다. 이달 1∼20일에만 지난해 12월 수출액의 200배에 이르는 규모의 마스크(기타 섬유제품 포함)가 중국으로 수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마스크 대란이 심화하면서 사용법을 놓고도 정부가 말을 뒤집기까지 했다. 이의경 식약처장은 26일 브리핑에서 “새롭게 교체할 마스크가 없을 경우에는 재사용할 수 있다”며 본인이 오염 정도를 판단하라고 했다. 정부는 그동안 마스크 재사용에 대해 ‘불가’ 의견이었다. 코로나19 방역을 총괄하는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은 4일 “일회용 마스크 제품을 재사용하면 필터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세종=주애진 jaj@donga.com / 한성희·박재명 기자


#코로나 바이러스#코로나19#마스크 공급#우체국#농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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