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 임종 못보고 영원한 이별… 화장때도 방호복 2, 3명만 참관
대구 70대 할머니 섬망증 시달려
가족들 “얼굴 한번만…” 호소
병원, 손편지 읽어주고 사진 전달… 의료계 “환자 심리안정에 큰 도움”
의사가 병에 걸렸다고 말했다. 말로만 듣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었다. 준비할 새도 없이 바로 입원했다. 같은 병을 피하지 못한 남편도 다른 병원에 입원했다. 며칠간 남편 얼굴도 못 본 채 치료만 받았다. 갑자기 연락이 왔다. 남편이 죽었다고…. 하지만 장례식에 갈 수 없었다. 아직 내 몸속에 바이러스가 있어서다. 남편의 시신은 화장된다고 했다. 주위에선 법(감염병예방법)이 그래서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그렇게 부부는 마지막 인사도 못 하고 헤어졌다. 입원 중인 아내는 마침 의료봉사 중인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에게 “이 기막힌 상황을 누구에게 하소연할 수 있겠냐”고 말했다.
코로나19 사망자는 방호복을 입은 의료진에게 둘러싸여 세상을 떠난다. 임종을 지킬 수 없는 가족들은 사망 통보를 받고서야 사랑하는 이가 떠나버린 사실을 알게 된다. 화장장에도 유족 중 두세 명만 방호복을 입고 들어갈 수 있다. 누구나 생의 마지막엔 가족과 함께이길 바라지만 낯선 곳에서 홀로 세상을 떠나야 하는 것이다.
애가 타는 건 유족뿐 아니라 입원 중인 환자의 보호자도 마찬가지다. 대구 지역의 병원에는 홀로 사투를 벌이는 코로나19 환자가 많다. 중환자실에 입원 중인 환자들은 가족의 얼굴 한 번 보는 게 소원이다. 하지만 감염 위험 탓에 출입이 불가능하다.
계명대 대구동산병원 중환자실에 입원 중인 김종해 씨(74·여)도 코로나19 환자다. 감염 경로는 확인되지 않았다. 4일 입원 때는 걸어서 왔는데 다음 날부터 열이 나면서 폐렴 증상이 심해졌다. 아들 안성규 씨(49)는 5일 전복죽을 싸들고 어머니를 찾았지만 만나지 못했다. 허탈한 마음을 안고 집에 왔을 때 “마음의 준비를 하시라”는 주치의의 전화를 받았다. 안 씨는 6일 병원에 찾아가 “엄마 얼굴 한 번만 보고 싶다. 방호복을 입고 들어가면 안 되겠냐”고 애원했지만 다시 발길을 돌려야 했다.
7일에는 어머니로부터 짧은 전화가 6차례나 걸려왔다. ‘섬망’(환각 등 의식장애) 증세가 심해진 김 씨가 “불이 났다. 빨리 구해달라. 연기가 난다”고 말하고 끊기를 반복했다. 안 씨는 “정신이 없는 와중에 하얀 방호복을 입은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니 소방관이라고 생각하신 듯하다”며 눈물을 훔쳤다.
치킨집을 운영하는 안 씨는 대구에 코로나19가 번지자 일주일에 한 번씩 경북대병원, 칠곡경북대병원, 대구동산병원 의료진에게 치킨 150마리를 보내왔다. 치킨을 세 번 보내는 동안 어머니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아 입원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안 씨는 어머니가 입원한 뒤 날마다 쌀과 초를 챙겨 팔공산 갓바위에 오르고 있다. 어머니께 드리는 전상서도 썼다. 제발 건강하게 돌아와 달라고, 그동안의 불효를 용서해 달라고…. 김 씨의 사위와 손주들도 모두 편지를 썼다. 함께 찍은 가족사진도 모았다.
이를 건네받은 의료진은 8일 김 씨 손에 사진을 쥐여주고 큰 소리로 편지를 읽었다. 현장에 함께한 사공정규 동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어르신이 눈을 감고 있었지만 의식이 있는지 편지를 읽는 의사의 손을 꽉 잡고 있더라”며 “섬망을 치료하려면 익숙한 환경, 가족과의 유대를 지속시키는 환경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현장에서는 ‘가족 치료’가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통상 섬망이 생긴 중환자라면 가까운 보호자가 진정시켜 주는 게 효과적이다. 그런데 방호복을 입은 낯선 의료진만 보게 되니 환자는 심리적으로 더욱 불안할 수밖에 없다. 일부 병원은 위중한 환자의 경우 가족 대표가 중환자실에 출입하도록 방침을 바꾸는 것을 검토 중이다. 정호영 경북대병원장은 “방호복을 입은 가족 대표가 감염 예방교육을 받고 의료진 도움을 받아 환자를 만나면 된다. 그리고 2주간 자가 격리를 한다면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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