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16일 서울 중구 한은에서 열린 임시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한은이 임시 금통위를 열고
금리를 내린 것은 2001년 9·11테러 직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한국은행 제공
한국은행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대응하기 위해 금리 인하를 단행함에 따라 한국에도 사상 처음으로 ‘0%대 기준금리 시대’가 열리게 됐다. 당장 기업과 가계의 채무 부담이 줄고 시중에 유동성이 늘어나는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된다. 미국이 먼저 0% 수준으로 기준금리를 대폭 낮췄기 때문에 외국인 자금 유출 우려가 희석된다는 점에서 시기가 나쁘지도 않다.
그러나 금리 인하로 인해 가계부채가 늘어나고 부동산 시장을 자극할 수 있다는 점은 작지 않은 부담이다. 그럼에도 한은이 긴급 처방에 나선 것은 기존에 발표된 32조 원 규모의 정부 부양책과 더불어 ‘재정·금융 패키지’를 통해 경기 하강에 강력 대응하겠다는 시그널을 시장에 준 것으로 풀이된다. ○ 한은 “성장 전망 자체가 의미 없는 상황”
이주열 한은 총재는 16일 임시 금통위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금리 인하 배경에 대해 “코로나19의 확산으로 하방 리스크가 커졌다. 시장 불안이 장기화되면 실물 분야로 파급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로 시작된 생산·소비 분야 타격이 금융 시스템을 뒤흔들면 실물경제가 더 큰 타격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한은은 특히 기존 성장률 전망치(2.1%) 달성이 불가능해졌다고 밝혔다. 올해 성장률이 1%대 또는 그 이하가 될 가능성도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이 총재는 “지금은 성장률 전망이 의미가 없고 코로나19 사태가 언제 끝날지 모르는 만큼 가능하지도 않다”고 했다. 최근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가 한국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1.0%로 하향 조정하는 등 국내외 주요 기관들은 올해 1% 성장률도 버겁다고 보고 있다.
정부도 향후 경기에 대해 냉정한 전망을 내놓고 있다.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은 이날 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메르스 등) 과거 감염병 사태에서 글로벌 경제가 일시적 충격 후 V자 반등을 했지만 (이번에는)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U자, L자 경로마저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번 침체가 오래갈 수 있다는 것이다. 기재부는 최근 경제동향(그린북)에서도 “경제심리가 위축되고 실물경제와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고 했다. ○ “근본적인 경기 침체 대응엔 역부족”
한은이 역대 처음으로 0%대 기준금리 카드를 꺼내 들었지만 막상 경기 부양에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기본적으로 한은이 금리를 내리면 코로나19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자영업자나 중소기업의 이자 부담이 줄어들고 시장의 심리를 호전시키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유동성을 원하는 곳에 직접 공급하지 못하는 통화정책의 특성상 부동산 시장만을 자극하거나 가계부채 확대로 이어질 수도 있다. 또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이로 인한 경기 침체에 근본적으로 대응하는 데는 사실상 역부족일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이 때문에 통화정책 완화뿐 아니라 재정 지출을 더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는 “공급된 돈이 실물로 가게 하지 못하면 실물경제는 디플레이션, 부동산은 인플레이션으로 양극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은은 추가 조치를 예고했다. 금통위는 이날 성명에서 “국내외 금융·경제 여건의 불확실성이 매우 높은 만큼 앞으로도 통화정책을 완화적으로 운영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시장에서는 추가 금리 인하 또는 채권 매입 등 양적 완화가 나올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기축통화국이 아닌 한국이 여기서 더 금리를 내릴 경우 자칫 부작용만 커지거나 자본 유출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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