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교통약자 이동편의시설
작년 강북 이어 803km 전수조사
시각장애 음향 신호기 부적합 등 보행환경 시설 대폭 정비하기로
유난히 더웠던 지난해 여름. 서울 한강 이북 지역의 보행자용 도로를 조사하며 다닌 이들이 있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2인 1조로 짝을 이뤄 총 24명이 866km에 달하는 서울 강북권 보도 곳곳을 훑었다. 이들의 활동은 서울시의 보도가 과연 장애인에게도 충분히 걷기 좋은 환경을 제공하고 있는지를 전수조사를 통해 확인하고, 부족한 점은 선제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시도였다.
서울시는 지난해 처음으로 강북권 보도를 대상으로 이러한 교통약자 이동편의시설 전수조사를 진행한 결과 총 1만6286건이 설치기준에 맞지 않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19일 밝혔다. 조사 내용은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 시행규칙에서 정한 기준에 따라 관내 보도(특별시도상)에서 △보도포장 △횡단보도 진입턱 및 점자블록 △시각장애인 음향신호기 △신호등 잔여시간 표시기 △차량진입제어 말뚝(볼라드) 등이 잘 설치됐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부적합 사례의 45.6%(7426건)는 시각장애인 음향신호기로 나타났다. 이 시설은 시각장애인이 횡단보도를 건널 때 신호 상태를 음성으로 알려주는 것이다. 손에 잘 닿을 수 있도록 지상에서 1∼1.2m 위치에 설치하고, 신호기의 30cm 앞에는 점자 형태의 블록이 깔려 있어야 한다. 하지만 상당수 신호기가 잘못 설치됐고, 점자블록이 없는 곳도 적지 않았다.
차량의 보도 진입을 막는 말뚝인 볼라드의 부적합 사례도 많았다. 볼라드는 차량의 이동은 막으면서도 사람이나 휠체어 등이 부딪혔을 때 큰 부상을 입는 것을 막기 위해 탄성이 있는 재질로 만들어야 한다. 밤에도 눈에 잘 보이도록 반사스티커 등이 붙어 있어야 한다. 이런 기준을 따르지 않은 사례가 3797건(23.3%)에 달했다.
횡단보도 진입턱 및 점자블록(3715건, 22.8%), 신호등 잔여시간 표시기(706건, 4.3%), 보도포장(624건, 3.8%) 등의 부적합 사례가 뒤를 이었다. 손형권 서울시 보행정책팀장은 “비장애인이 미처 챙기지 못한 문제점을 장애인이 직접 현장을 둘러봄으로써 제대로 확인할 수 있었다”며 “부적합한 시설은 빠르게 개선할 수 있는 것부터 순차적으로 정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올해는 강남권 보도 803km의 전수조사를 진행한다.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직접 보행하면서 교통약자 이동편의시설의 설치 실태와 불편사항을 조사할 예정이다. 특히 올해는 설치기준에 부적합한 시설뿐만 아니라 적합 시설을 포함한 보도 위 모든 교통약자 대상 이동편의시설을 조사한 뒤 이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계획이다.
시는 전수조사와 별도로 2016년부터 횡단보도 진입턱과 점자블록의 상태를 중점적으로 확인, 정비해왔다. 이는 시각장애인과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의 안전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시는 그동안 파악하고 관리해 온 총 4만280곳의 정비 대상 가운데 지난해까지 1만166곳(25.2%)의 정비를 마쳤다. 횡단보도의 폭에 맞춰 진입턱을 낮추고, 점자블록을 깔아 시각장애인과 휠체어의 이동을 편리하게 한 것이다.
시는 아직 정비하지 못한 횡단보도 중 1만1144곳을 우선 정비대상 지역으로 선정해 2024년까지 정비를 마치고, 나머지 지역도 순차적으로 손을 볼 계획이다. 황보연 서울시 도시교통실장은 “교통약자가 시 전역 어느 곳이든 혼자 이동할 수 있을 정도의 보행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장애인의 의견에 귀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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