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옮길까 스스로 문 걸어 잠갔다 ●승객, 손님 사라진 재난영화 세트장 같은 도시 ●들안길, 동성로, 서문시장도 텅 비어 ●저소득 저신용 자영업자 연쇄 부도 초읽기 ●“내 걱정한다꼬 대구 온다는 소리 함부래 치아라” ●“시민 힘으로 위기 이겨낸 새 역사 쓰자” 각오
2월 18일 이후 대구시민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에서 살고 있다. 국내 31번째이자 대구 첫 코로나19 확진자 A씨(여·61·대구 서구)가 그날 확진 판정을 받았다. 환자 발생 초기만 해도 모두 확진자 동선 파악에 집중했다. 그가 어디서 감염됐는지를 알고자 분주했다. 아직 희망이 섞여 있었다. ‘감염원만 찾아내면 금방 수그러들겠지. 그게 안 돼도 대구시 통제 안에서 관리는 될 거야’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2월 18일 이후 대구의 코로나19 확진자는 하루 사이 10명(19일), 23명(20일), 50명(21일), 70명(22일)씩 늘었다. 2월 23일 148명이 발생해 하루 100명을 넘어섰고, 27일 340명을 거쳐 29일에는 741명까지 급증했다. 이후 대구시민들은 그동안 품었던 기대를 모두 내려놓았다. ‘대구시가 아니라 중앙정부가 나서도 통제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판단했고, 이미 생각은 현실이 됐다.
○ 일상이 허물어진 도시
질병관리본부(질본)와 대구시 어느 누구도 당시 지역사회 내 감염 전파를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를 직감한 대구시민은 각자 집 안으로 들어가 현관문을 걸어 잠갔다. 이후 한 달 가까이 스스로 갇혀 지내고 있다.
지금 대구 도심은 마치 인기 떨어진 드라마 세트장처럼 변했다. 어떤 이는 대규모 바이러스 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 속 도시의 실사판 같다고도 한다. 동대구역에서 수성못으로 이어지는 왕복 12차선 동대구로, 수성구에서 달서구로 이어지는 10차선 달구벌대로에 치솟은 대형 상업용 빌딩 외관은 멀쩡하다. 하지만 오가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다. 말짱한 건물과 달리 대구시민의 일상은 조금씩 허물어지고 있다.
2월 말 여당 지도부는 말 한마디로 겨우 버티고 있던 대구시민을 또다시 주저앉혔다. 더불어민주당과 정부, 청와대가 2월 25일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대책을 내놓으며 ‘대구·경북 봉쇄 조치’라는 말을 꺼냈을 때 얘기다. 이후 민주당은 “‘최대한의 봉쇄 정책을 시행한다’는 건 방역망을 촘촘히 해 코로나19 확산과 지역사회 전파를 차단하겠다는 뜻이다. 지역 출입 자체를 봉쇄한다는 의미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상처 난 시민 마음을 다독이기엔 부족했다.
대구시민은 그러잖아도 알아서 조심했다. “대구에서 집단발생한 코로나19가 국가 전체로 확산하는 것이 아닐까” 싶어 스스로 고립을 택했다. 그런 사람들에게 ‘대구 봉쇄’라는 말을 내뱉어 버린 것이다. 스스로 실행하고 있기에 굳이 말할 필요도 없던 ‘대구 봉쇄’ 발언에 일주일가량 참고 있던 감정이 폭발했다.
그래도 대구시민은 점잖았다. 언론이 앞서 보도하지 않았다면 겉으로는 표시조차 나지 않은 채 지나갔을 정도로 차분했다. 어떤 이는 “지금은 바이러스와 싸워야 할 때라 ‘말 같지도 않은 소리’는 그냥 넘긴다”고 했다. 그 또한 바이러스의 숙주가 되지 않기 위해 스스로 ‘자가 봉쇄’를 선택한 사람이다. 지금 수많은 대구시민은 그렇게 코로나19뿐 아니라 세상의 편견과도 싸우며 한 달가량을 버티고 있다.
○ 승객 한 명 없는 버스
3월 10일 오후 8시 10분 동대구역. 입점 상가 44곳 가운데 문을 연 곳은 편의점 2곳과 약국, 롯데리아와 커피전문점 각 1곳 등 5곳이 전부였다. 나머지 가게가 일찍 문을 닫은 게 아니다. 2주 전부터 아예 장사를 하지 않는다. 동대구역 안에 A4 크기의 ‘임시휴업’ 안내 문구를 붙이지 않은 점포는 그래도 영업 중인 5곳과 코레일관광개발(주)이 운영하는 중소기업 제품 판매점 ‘중소기업 명품마루’ 밖에 없었다.
영업을 한다고 해서 손님이 있는 건 아니었다. 실내 좌석 50개가량인 롯데리아 매장에는 아르바이트생 2명뿐이었다. “앉아서 먹는 사람은 없어도 포장해 가는 사람은 좀 있죠?”라는 질문에 아르바이트생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같은 날 오후 7시쯤 대구 수성구청 맞은편 버스정류장에도 인적이 드물었다. 1494세대 아파트 단지 바로 앞에 있고, 14개 노선 버스가 지나는 곳이다. 1시간 정도 머물며 상황을 지켜봤다. 그곳을 지나는 버스 가운데 승객이 5명 이상 탄 버스는 단 한 대도 없었다. 990번과 840번 버스에는 운전기사밖에 없었다. 840번은 대구 인근의 경일대, 대구가톨릭대, 대구대, 영남신학대 등 4개 대학을 지나는 버스다. 그런데 승객이 전무했다. 상당수 버스가 내리는 승객도, 정류장에서 타려고 기다리는 승객도 없어 정류장에 서지 않은 채 통과했다.
한 버스에서 내린 최장호(38) 씨는 “지금은 오히려 버스가 택시보다 안전한 것 같다”고 했다.
“대구에서 확진자가 나오기 전엔 버스를 타는 게 조심스럽기도 했다. 서울 등 다른 지역 소식을 들으며 ‘대구에서도 환자가 나오면 어쩌나’ 하던 시절이다. 그런데 막상 환자가 많아지고 사람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으니 요즘엔 버스에 승객이 거의 없다. 가끔은 버스 전체에 기사분과 나, 2명밖에 없다. 그러니 좁은 택시를 탈 때보다 더 안심이 된다.”
통상 대구 시내버스엔 좌석이 25개 있다. 이 공간이 요즘은 거의 텅텅 빈다. 버스 승차 인원이 택시 승차 정원보다 적을 만큼 철저히 상호 접촉을 피하는 대구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건 마스크를 구매할 때뿐이다. 마치 마스크가 바이러스로부터 목숨을 지켜주는 유일한 방패라도 되는 것처럼 수많은 시민이 목숨을 내놓고 판매처 앞에 줄을 섰다.
마스크 대란이 있은 후 처음으로 대규모 공급이 있던 2월 24일, 대구지역 이마트 점포마다 인파가 몰렸다. 2월 26일까지 3일에 걸쳐 공급하려던 마스크 141만 장이 이틀 만에 동날 정도였다. 이때 마스크를 사려고 1시간가량 줄을 섰던 최재민(39·대구 북구 침산동) 씨는 “겨우 마스크 몇 장을 사겠다고 이렇게 오래 줄을 서 기다리는 날이 올 줄 상상도 못했다. 그래놓고 ‘와 마스크를 샀구나’ 하며 뿌듯함을 느끼게 될 줄도 몰랐다. 그런 나를 보면서 스스로 기분이 묘했다”고 전했다.
○ “코로나19 안 걸려도 굶어 죽겠다”
대구에서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나온 지 19일째인 3월 8일 오후 7시, 대구의 대표적인 음식점 거리인 수성구 들안길을 찾았다. 저녁 장사로 분주해야 할 식당은 불이 꺼진 지 오래다. 한 집 건너 한 집이 영업을 하지 않는 상태였다. 일찍 문을 닫은 곳도 있지만, 임시 휴업이라고 써 붙여놓은 곳도 적지 않았다.
들안길 끝에 자리한 복요리 전문점 S복어, 바로 옆에 있는 Y한정식. 둘 다 50대 이상 주차시설을 갖추고 있을 만큼 대형 식당이지만 주차장은 텅 비어 있었다. Y한정식은 케이블TV 요리 경연 프로그램에서 최종 우승을 차지한 가게로 평소 저녁 시간이면 늘 손님들로 붐볐다. 하지만 오가는 사람이 아예 보이지 않았다. 식당 입구로 다가가자 “임시휴업 안내. 코로나 사태로 임시 휴업합니다”라는 안내 현수막이 내걸려 있었다.
근처에는 벌써 폐업한 곳도 있었다. 국내 대형 치킨 프랜차이즈 매장 한쪽 벽면에 “영업 종료 안내. 02/27. 그동안 아껴주셨던 고객님들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라는 내용의 현수막이 붙어 있는 게 보였다. 인근 가게 상인은 “실내장식을 새로 하고 문을 연 지 얼마 안 된 것으로 아는데 저렇게 됐다”고 혀를 찼다.
들안길 상가번영회에 따르면 회원 식당은 들안길 안에 120여 곳에 이른다. 회원으로 가입하지 않은 곳까지 합치면 이 근처 식당은 150곳이 넘는다고 한다. 대부분 규모가 커서 단체 모임 손님이 많은 게 이 지역 식당 특징이다. 코로나19로 사회적 모임 자체를 꺼리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들안길 식당들은 직격탄을 맞았다. 들안길 상가번영회 관계자는 “3월 12일 현재 영업을 하는 가게는 전체의 30%에 불과하다. 문을 연 가게 매출도 평상시 대비 99%가량 줄었다”고 밝혔다.
문을 연 가게도 주인과 주방장 한 명만 나와 있는 경우가 많았다. 사정이 좀 나은 곳도 홀 직원까지 3명 정도 일하는 게 전부였다. 평소에는 최소 10명 이상의 직원이 일하던 곳이라는 게 인근 상인들 귀띔이다. 직원이 있다고 해서 손님까지 있는 건 아니다. 출근한 이들은 주로 언제 올지 모르는 손님을 기다리며 청소 및 방역, 가게 수리 등을 하다 집에 간다고 했다.
들안길 내에서 한우전문점을 운영하는 김모 씨를 만났다. 코로나19 대구 확진자가 나오기 전 김씨 가게 하루 매출은 적게는 300만 원, 많게는 400만 원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최근 매출은 이때의 10%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3월 10일 한우전문점 매출은 12만5000원. 이곳 월세는 1210만 원이다. 직원 10명의 평균 임금도 270만 원이 좀 넘는다.
들안길 상가번영회 김갑동(53) 회장은 “들안길 내 식당은 규모가 크다. 식당을 2개 정도 운영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 보니 ‘그동안 벌어놓은 걸로 견딜 수 있지 않겠느냐’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여기 사정을 모르고 하는 말”이라고 했다. “최저임금이 많이 올랐고, 4대 보험 부담도 커진 상황이어서 벌어둔 돈으로 운영하는 사람은 없다고 보면 된다”는 것이다.
김 회장은 또 “코로나19사태가 길어지면서 어떻게 하면 손해를 덜 보고 가게를 정리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다만 인수할 사람이 없어 울며 겨자 먹기로 버티고 있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 대구 짓누르는 코로나19發 경기 침체
정부는 추경을 통해 위기에 빠진 자영업자를 돕겠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김 회장은 기대하지 않는다고 했다. “얼마 전 문재인 대통령께서 대구에 온다고 할 때, 수성구청에서 상인들에게 건의 사항을 물어봤다. 그때 생각을 좀 해봤는데 딱히 부탁할 게 없더라”면서 “하루빨리 바이러스가 사라져 시민들이 외식이라도 좀 더 많이 해주길 기대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상황이 나아졌다고, 하루 3끼 먹던 사람이 5끼를 먹지는 않을 텐데 어쩌나”라며 한숨도 내쉬었다.
“동성로에서 28년간 장사했지만 이런 일은 처음입니다. 눈뜨고도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2월까지 대구의 최고 중심지이자 최대 상권인 동성로 상점가 상인회장으로 일했던 양기환(56) 씨는 코로나19 확산 이후 동성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동성로 상점가는 소매점이 5000개 이상 몰려 있는 곳이다. 1월 20일 국내 첫 확진자가 발생했을 때만 해도 손님이 조금 줄었을 뿐 큰 차이가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2월 18일부터 매출 감소가 시작돼 20일부터 급감 추세를 보였고, 지금은 90% 정도 줄어든 상태다. 이런 상황에 정신적 충격을 받은 사람까지 있다고 양 전 회장은 전했다.
“원래 2월 중순이면 봄 신상품을 꺼내놓기 시작할 때인데, 다들 제대로 팔아보지도 못하고 이월 상품으로 넘겼다. 감염 우려가 큰 동전 노래방, 학원 등도 문 닫은 지 한 달가량 돼간다.”
그렇게 문을 닫고도 상당수 상인이 분위기를 살피고자 동성로에 계속 나오지만, 정작 과감하게 영업을 재개하는 이는 거의 없다고 한다. 그는 “코로나19 확산 이후 동성로 상가의 월세를 깎아주자는 운동을 진행했지만 받아들이지 않는 건물주가 더 많다”고도 했다.
양 전 회장에 따르면 동성로 상가 투자금액은 99㎡(약 30평 기준) 기준으로 보증금과 실내장식, 제품 비용 등을 고려해 5억~6억 원에 달한다. 중심가 월세는 3.3㎡당 90만~100만 원, 보증금도 3.3㎡당 1000만 원 정도다. 그는 “이런 상황이 3개월만 이어지면 최소 30곳 이상이 문을 닫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구의 대표적인 시장인 서문시장도 2월 말 500년 만에 처음으로 일주일간 문을 닫았다. 3월 2일 다시 문을 열었지만 상황이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김영오 서문시장 상가연합회장은 “전체 다 문을 닫으면 개별적으로 장사하고 싶은 사람조차 못 하게 될까봐 다시 문을 열었는데, 오는 사람이 없다. 그냥 상인들끼리 얼굴 보고 하소연하는 형편”이라고 전했다.
○ 저소득 저신용 자영업자가 위험하다
대구시내 학원도 대다수 문을 닫았다. 대구시교육청에 따르면 3월 9일 현재 대구의 학원·교습소 7441개소 중 94%(717개소)가 휴원 상태다. 2월 19일 8%에 그쳤던 휴원율은 그달 23일부터 90% 이상을 유지했고, 27·28일에는 98%에 달했다. 대구 수성구 범어동에서 영어학원을 운영하는 한 원장은 “개학이 계속 연기되면서 수업을 해달라고 요구하는 학부모와 학생이 적잖다. 방역을 철저히 하고, 학생 수를 최소화해서라도 문을 다시 열려고 했지만, 그렇게 하면 담당 구청은 물론 소방서, 세무서까지 조사하러 나온다고 해 마음을 접은 상황”이라고 밝혔다.
대구 자영업자의 상당수는 손님이 없어 문을 닫았거나 사람이 모일까 봐 강제로 영업을 못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문제는 대구 자영업자 비율이 전국 평균을 웃도는 것은 물론 부채 비율도 높아 이런 충격이 폐점으로 이어지고, 지역 경제 위축으로까지 연결될 수 있다는 점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6년 말 기준 대구 전체 취업자(123만4000명) 중 자영업자(28만1000 명) 비중은 22.8%로, 전국 평균(21.2%)을 웃돈다. 서울시와 6대 광역시 중 가장 높다. 인구 1000명당 사업자 수도 대구(95개)가 서울(104개) 다음으로 많다. 대구 전체 사업체 매출액 중 자영업이 차지하는 비중도 23.6%로, 전국 평균(12.2%)의 2배 수준이다.
심각하게 볼 것은 이렇게 많은 대구지역 자영업자 가운데 상당수가 빚으로 연명하고 있다는 것. 2017년 6월 말 기준 대구 자영업자 대출 차주(돈을 빌린 사람)의 소득 대비 대출 비율(LTI)은 930.0%로, 서울을 제외하고는 전국 최고다. 돈을 빌린 사람 중 다중채무자면서 저소득(하위 30%) 또는 저신용(7~10등급)인 차주의 대출 규모는 1조7000억 원으로, 지역 자영업 대출의 5.2%(차주 수 기준 8.1%)를 차지한다. 이런 취약 차주 1인당 대출 규모는 2억5100만 원으로 전국(1억8290만 원)과 여타 광역시(1억6910만 원)보다 훨씬 크다.
한국은행 대구경북본부가 1월 발표한 ‘대구·경북지역 자영업자 대출의 건전성 평가 및 시사점’ 자료를 보면, 소득수준 하위 30%인 저소득 자영업자의 장기연체 비율은 2017년 말 0.23%에서 2019년 6월 말 1.37%로 급등했다. 특히 신용등급 7~10등급의 저신용자 장기연체 대출이 2017년 10.9%에서 2019년 6월 말 15.85%까지 확대됐다. 코로나19발 악재가 이들을 덮치면 더 큰 위기에 빠질 수 있다.
정부가 최근 이런 자영업자를 위한 긴급지원 방침을 밝혔지만,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이는 거의 없다. 신청 절차가 복잡한 데다 지원 금액 자체도 크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대구신용보증재단 등이 ‘코로나19 특별보증’에 나서고 있지만, 실제 도움을 받기까지 최장 두 달이 걸려 효과를 거두기 어려울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대구신용보증재단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자영업자를 돕고자 특별보증을 시작한 뒤 한 달도 안 돼 평소 1년치 신청자 수 이상의 신청이 들어왔다”며 “특례보증 등 지원을 하려면 사업장 실사 등 절차를 거쳐야 해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는 점이 우리도 안타깝다”고 말했다.
대구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한 상인은 그저 한숨만 내쉬었다. “지금 하루하루 견디기가 힘든 상황인데 두 달 뒤 얘기가 무슨 의미가 있나. 이미 폐업한 뒤 돈을 받아봤자 뭐 하나.” 그는 “ 이 정부는 생사를 다투는 응급환자를 감기환자 대하듯 한다”며 “장례식까지 다 치른 사람을 다시 살릴 재주가 있나 보다”라고 비꼬았다.
○ 마지막 인사도 못 하고 부모 떠나보내는 유가족들
3월 12일 현재 코로나19로 생을 마감한 대구시민은 총 46명. 방역당국에서는 이들을 몇 번째 사망자로 분류하지만, 각각의 개인에게는 숫자로 표현할 수 없는 비극일 수밖에 없다. 남은 가족 또한 세상에 하나뿐인 아버지, 어머니 등 소중한 이를 잃은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이승에서 할 수 있는 마지막 인사조차 못한 채 가족을 먼곳으로 보내는 게 현실이다. 46명 그 누구도 예외가 없었다.
현재 코로나19 사망자 시신 수습은 ‘노출 최소화’ 방식으로 이뤄진다. 통상 고인을 염습하고 수의를 입히지만 코로나19 사망자에게는 이것이 허락되지 않는다. 환자가 사망하면 개인보호장구를 착용한 직원이 시신을 비닐백, 시신백 등으로 2차 밀봉한 후 국가재난대비 지정장례식장의 전염병 격리 안치실로 보낸다. 그 상태로 입관하고 화장까지 한 뒤 유가족이 원하면 그제야 장례를 치를 수 있다. 일반적으로는 장례 후 화장을 하지만, 바이러스 위험 때문에 화장을 먼저 진행하는 것이다.
유족이 원할 경우 개인보호장구를 착용한 상태로 임종과 화장 등을 참관할 수 있는 게 원칙이지만, 현실적으로 유가족에게 개인보호장구를 제공하기 어려워 유가족은 떠나는 이의 마지막 모습을 직접 보기 어렵다.
3월 9일 코로나19 치료 중 숨진 이차수(62) 전 대구시 북구의회 의장 역시 그렇게 가족 곁을 떠났다. 이 전 의장의 가족들은 다음 날 칠곡경북대병원에 장례식장을 마련했지만 출입이 전면 통제된 탓에 조문과 문상 없이 고인을 보내야 했다.
○ 일상의 행복을 잃어버린 대구
2월 18일 최초 확진자가 발생한 후 대구시민이 가장 바라는 것 중 하나는 일상 회복이다. 거창한 게 아니다. 지친 하루의 끝에 동료들과 간단하게 ‘치맥’ 한잔하는 것. 피로가 쌓인 날에는 6500원을 내고 목욕하는 것, 아버지 생신이면 가족이 모여 함께 밥 먹고 집 밖에서 서로 웃으며 헤어지는 것, 새로운 영화가 개봉하면 연인끼리 보러 가는 것 등이다.
인구 250만 명의 대구에서 현재 영화를 볼 수 있는 극장은 자동차극장 한 곳뿐이다.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 대형 멀티플렉스가 25곳 있지만, 2월 28일 CGV를 시작으로 3월 1일 롯데시네마, 3월 2일 메가박스가 차례로 임시 휴관에 들어갔다.
점심을 먹으려면 문을 여는 식당을 미리 확인해야 한다. 어제까지 하던 곳이 오늘 문을 닫기도 하고, 영업하는 식당 중에도 홀 손님을 받지 않고 배달만 하는 경우가 적잖아서다.
대구 수성구 범어동에 사는 오장욱 씨는 3월 1일이 팔순 잔칫날이었다. 일찌감치 호텔 예약을 마치고, 유명 MC도 섭외했지만 행사를 일주일가량 앞두고 모두 취소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민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자녀 5남매는 한자리에 모여 같이 축하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결과는 대구에 사는 막내아들 준호(45) 씨가 준비한 케이크를 먹으며 미리 찍어 온 손주들 축하 동영상을 보는 것으로 대신해야 했다. 서울에 사는 큰딸(53)과 둘째딸(51), 경기도에 사는 큰아들(49)과 막내딸(47) 내외는 아예 오지 못했다. 각자 다니는 회사에서 대구 방문을 금지해서다.
준호 씨는 “환갑, 칠순 때는 따로 잔치를 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원래 잔치하는 걸 싫어하셨는데 이번엔 그동안 다른 곳에서 대접만 받았다며 처음으로 자리를 마련한 거였다. 코로나19 때문에 그마저도 못 하고 식구들도 모이지 못해 안타까웠다”고 했다. “스마트폰 동영상으로 축하를 받으며 좋아하시는 아버지를 보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고도 덧붙였다.
“동영상을 다 보신 뒤 아버지가 스마트폰 영상 통화 방법을 알려달라고 하셨어요. 당분간 형님 누님 가족을 직접 보기 어려울 거 같으니 그렇게라도 얼굴을 보고 싶으신가 보다 생각했죠. 그런데 막내 누나한테 처음으로 영상통화를 걸어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야야. 내 괜찮은 거는 이걸로 보여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거기서 너거나 건강하게 있거래이. 그리고 내 걱정한다꼬 대구 온다는 소리는 함부래 치아라. 내가 (영상 전화) 자주 하꾸마. 그카고 너거들은 서울말 할 줄 아니까 마 대구 사람이라 카지 말고(얘들아. 나 괜찮은 건 이걸로 보여줄 테니 걱정하지 말고 거기서 너희나 건강하게 있어라. 그리고 내 걱정한다고 대구 온다는 소리는 아예 하지 마라. 내가 자주 할게. 그리고 너희는 서울말 하니까 그냥 대구 사람이라고 이야기하지 마라).”
준호 씨는 이 모습을 보고 “대구 사는 죄인이라는 생각이 들어 서글프기도 했다”고 말하다 잠시 울먹였다.
“그날 인사를 드린 뒤 집을 나서자 아버지가 배웅한다고 문 앞까지 따라 나오셨다. 혹시라도 아버지와 같은 빌라에 사시는 분들이 가족이 온 걸 탐탁지않게 생각할까 봐 인사도 제대로 못 드리고 돌아서면서 마음이 쓰렸다. 코로나19가 너무 당연한 것, 아무것도 아닌 것을 간절히 하고 싶게 만든다.”
○ 희망을 함께 만들어가는 대구시민들
3월 6일 오전 10시 30분. 대구 동구 파티마병원 3층 분만 수술실. 제왕절개(37주 6일)로 몸무게 3.13㎏의 여자아이가 태어났다. 산모와 아이 모두 건강했지만, 산모는 태어난 아이를 안아볼 수 없었다. 이 둘을 갈라놓은 것은 코로나19였다.
출산이 얼마 남지 않은 2월 24일 이 임산부는 대구 서구보건소에서 진행한 검사에서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았다. 산모가 코로나19 확진자인 탓에 갓 태어난 여자아이는 엄마 품 대신 음압병동이 있는 신생아 집중치료실로 옮겨졌고, 태어나자마자 코로나19 검사를 받아야 했다. 다행히 음성. 그리고 3월 10일 산모도 음성 판정을 받아 퇴원했다. 이렇게 대구 지역 곳곳에서는 희망이 피어나고 있다.
3월 12일 세계보건기구는(WHO)가 코로나19 세계적 대유행(팬데믹·pandemic)을 선언했다. 그러나 대구시민은 덤덤했다. 코로나19를 만만하게 생각해서가 아니라 이미 겪어봤고, 이겨내고 있어서다. 송정흡 칠곡경북대병원 교수(예방의학 전공)는 “팬데믹은 지역사회 감염이 시작됐다는 선언인데 대구시민은 거기 맞춰 생활한 지 벌써 20일이 넘었다. WHO 발표로 상황이 달라질 게 없다”라고 말했다.
대유행을 앞서 경험하고, 이겨내고 있는 대구시민은 이제 기대도 품는다. 지금은 중국 우한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확진자와 사망자가 나온 도시로 불리지만, 조만간 성숙한 영혼을 가진 시민 덕에 위기를 침착하게 이겨낸 도시로 재평가받기를….
또 기다리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 아이들이 마스크를 하지 않은 채 학교에 가는 날, 엘리베이터에서 버튼 누르는 것을 조심하지 않아도 되는 날, 마음이 힘든 날 친구를 만나 술잔을 함께 기울일 수 있는 날, 몸이 지치면 사우나에서 ‘어’ 하고 감탄사 맘대로 발하며 목욕할 수 있는 날, 그리고 누군가를 감염시킬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날을. 그런 평범한 날이 하루라도 빨리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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