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연한 봄기운에 산수유와 매화가 만발하고 개나리와 진달래도 꽃망울을 터뜨렸습니다. 쑥과 냉이도 대지를 박차고 올라와 푸르름을 더합니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사람들의 마음은 잔뜩 움츠려 있습니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는 말이 요즘처럼 실감 나게 가슴에 와 닿은 적이 없습니다.
‘춘래불사춘’은 중국 당나라 시인 동방규(東方규)의 시 ‘소군원(昭君怨)’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호지무화초(胡地無花草)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오랑캐 땅에는 꽃과 풀이 없으니 봄이 와도 봄 같지 않구나.” 척박한 이국땅에서 기구한 삶을 산 왕소군(王昭君·사진)의 원망하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중국 전한(前漢) 시대 원제(元帝)의 궁녀였던 왕소군은 춘추전국시대의 서시(西施), 삼국시대의 초선(貂蟬), 당나라의 양귀비(楊貴妃)와 더불어 ‘중국 4대 미인’으로 통합니다. 왕소군은 날아가는 기러기가 그녀의 미모에 넋이 나가 땅으로 떨어졌다고 해서 ‘낙안(落雁·기러기도 떨어뜨린다)’이란 별명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그녀는 흉노와의 화친 정책에 의해 흉노의 왕 호한야선우(呼韓邪單于)에게 시집 가 아들 하나를 낳았습니다. 그 뒤 호한야가 죽자 흉노의 풍습에 따라 왕위를 이은 그의 정부인 아들에게 재가하여 두 딸을 낳고 생을 마쳤습니다. 시인 동방규는 오랑캐 땅에서 왕소군이 느꼈을 슬픔과 외로움을 ‘춘래불사춘’으로 노래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자영업자들은 한계 상황에 내몰리고 있습니다. 불완전 고용 상태에 있는 수많은 노동자들도 일자리를 잃고 있습니다. 대기업들도 비상 경영 체제에 돌입했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유럽과 미국의 코로나19 상황이 더욱 심각해지고 있으며 각국의 주가는 폭락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가 방역에 총력 대응하고, 미국은 국내총생산(GDP)의 10%에 달하는 천문학적 규모의 경기부양책을 꺼내 들었지만 아직은 탈출구가 보이지 않습니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21일 대국민 담화문을 통해 ‘강도 높은 사회적 거리 두기 실천’에 동참할 것을 호소했습니다. 종교시설, 실내 체육시설, 유흥시설은 15일간 운영을 중단하고 국민들은 외출을 자제하며 최대한 집 안에 머물러 줄 것을 부탁하는 내용입니다. 형식은 권고이지만 내용에는 절박한 상황 인식과 더불어 강력한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이행 여부를 지방자치단체가 현장 점검하도록 했으며 위반 시설에 대해서는 행정 명령을 발동하겠다는 겁니다. 명령을 어길 시에는 감염병예방법에 따른 처벌(벌금 300만 원)과 확진자 발생 시 입원·치료비 및 방역비 등 일체에 대한 구상권(求償權)을 청구하겠다는 내용도 포함됐습니다.
지금 우리는 ‘춘래불사춘’과 같은 상황을 힘들게 견뎌내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사태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가운데 전국 초중고교 개학이 다음 달 6일로 예정돼 있습니다. 정부 차원에서 국민들의 생업 활동과 이동까지 제한하며 강력하게 대응하는 것은 바이러스와의 싸움에서 개학 전까지의 시간을 골든타임으로 본다는 의미입니다.
모두 보름 동안 서로 격려하면서 이 어려운 상황을 함께 극복해내야 합니다. 우리 스스로 코로나19 확산세를 꺾는 분수령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봄다운 봄을 손꼽아 기다리는 마음은 누구나 똑같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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