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 성 착취 동영상 제작 및 유포, 미성년자 유사성행위, 협박과 살인 음모, 사기…. 경찰이 조주빈 등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기며 적용한 혐의는 10여 개에 이른다. 그런데 크게 보면, 조주빈의 범죄는 개인정보를 알아낸 뒤 이를 이용해 피해자들을 자기 뜻대로 움직이려는 방식이었다. 이 과정에는 박사방의 ‘직원’으로 가담한 사회복무요원들이 핵심이었다는 게 경찰의 판단이다. 손석희 JTBC 사장, 윤장현 전 광주시장 등도 사회복무요원이 신상정보를 빼냈다.
○ 사회복무요원 통해 알아낸 정보로 협박
25일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조주빈 일당은 범행에 나설 때 온라인에서 불법으로 신원 조회를 하는 사회복무요원을 구하려 애썼다. 조주빈은 소셜미디어와 인터넷 커뮤니티에 자신의 텔레그램 계정을 공개하고 신원 조회를 맡을 사람을 구했다. 조주빈 범죄에 깊숙이 관여한 강모 씨(1월 9일 구속 송치)도 사회복무요원이었다.
공범 강 씨는 지난해 3월부터 12월까지 수도권에 있는 한 구청에서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했다. 강 씨가 근무했던 구청 관계자는 “담당자가 화장실 등을 가며 잠깐씩 자리를 비우는 틈을 이용해 개인정보를 조회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강 씨는 이렇게 빼돌린 피해자들의 주민등록번호와 주소, 전화번호 등을 조주빈에게 제공했다.
조주빈은 강 씨가 경찰에 잡힌 뒤엔 또 다른 사회복무요원을 모집하려고 했다. 1월 3∼21일 트위터에 “신원 조회 가능한 공익, 공무원분 구합니다. 목돈 지급, 익명 보장” “이름, 생년월일 등으로 행정시스템 조회되는 분은 텔레그램 ×××로 연락주세요” 등의 글을 올렸다. 무려 27개나 된다. 이 텔레그램 계정은 조주빈 본인이 사용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올해 3월 구속 송치된 최모 씨도 2017년 8월부터 지난해 7월까지 서울의 한 주민센터에서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했다.
이들은 왜 이렇게 ‘신원 조회’에 집착했을까. 경찰 관계자는 “전화번호 등을 알면 텔레그램 등으로 피해자에게 접근하기가 수월한 데다 신상정보를 갖고 압박하면 피해자들을 심리적으로 굴복시키기 용이하다”고 했다. 예컨대 남성들을 대상으로 사기를 저지를 때도 이런 정보는 효과적이다. 손석희 사장도 “조주빈은 ‘흥신소 사장’이라며 텔레그램을 통해 접근했다”고 밝혔다.
조주빈 일당이 흥신소와 비슷한 형태로 조직을 운영한 정황도 드러났다. 지난해 3월 5일 트위터에는 조주빈 등이 사용한 것으로 확인된 텔레그램 계정과 함께 “흥신소 엘정보입니다. 민간조사, 조회해 드립니다. 각종 심부름, 불륜 조사, 뒷조사, 정보 캐기. 등초본주소 택배지 전화번호 세컨폰 등등 조회 가능”이란 글이 올라왔다. 해시태그도 ‘#흥신소 #뒷조사 #정보캐기’로 달았다.
‘대포폰’도 범죄에 이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3월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모든 중고폰 삽니다. 기종 상관 없음”이란 글을 올렸다.
○ 여성 피해자에겐 사과하지 않은 조주빈
조주빈은 25일 오전 8시경 서울 종로경찰서 유치장에서 나와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차분한 표정으로 “손석희 사장님, 윤장현 시장님, 김웅 기자님을 비롯해 저에게 피해를 입은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멈출 수 없었던 악마의 삶을 멈춰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미안해하거나 두려워하는 눈빛과 말투는 찾을 수 없었다.
하고픈 말을 마친 조주빈은 이후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목에는 보호대를 하고 머리에는 상처치료용 거즈를 붙이고 있었다. 목 보호대는 조주빈이 17일 유치장에서 자해 소동을 벌인 뒤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른바 조주빈을 포함해 ‘텔레그램 성 착취 대화방’ 사건에 대응하려 특별수사팀을 구성하고 유사한 사건도 재검토하기로 했다. 서울중앙지검은 25일 구성한 ‘디지털 성범죄 특별수사 태스크포스(TF)’ 산하에 3개 팀을 꾸렸다. 수사 및 공소 유지와 형사사법 공조를 맡는 ‘사건수사팀’,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와 법리 검토를 담당하는 ‘수사지휘팀’, 범죄수익 환수와 제도 개선을 검토하는 ‘재발방지팀’이다.
대검찰청은 이날 오전 김관정 대검 형사부장 주재로 전국 여성아동범죄조사부(여조부) 부장 긴급 화상회의를 열었다. 대검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접수된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 제작 및 배포 등의 사건을 모두 분석할 계획이다. 대검 관계자는 “최근에 처분이 끝난 유사 사건도 전면 다시 검토할 방침”이라며 “법리 검토 뒤 사건 처리 기준도 강화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성 착취 동영상 등과 관련해 생산과 제작, 유통, 매매부터 수익 취득과 배분까지 모든 과정을 철저히 밝혀내기로 했다. 불법 영상물이 온라인으로 퍼지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기술적 방안을 찾고 유관 기관과도 협력할 예정이다. 대검은 “불법 이득은 끝까지 추적해 환수하고, 해외 서버에 대해서도 형사사법 공조 등 국제 공조에 적극 나서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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