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조용휘]대구-부산 ‘마음의 거리 좁히기’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3월 31일 03시 00분


부산과 대구는 영남의 대표 도시지만 멀고도 가까운 사이다.

16년째 결론을 못 내고 있는 동남권 관문공항(김해신공항) 건설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두 도시의 애증(愛憎)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코로나19로 나라가 위난에 빠지고, 국민이 위험에 처하자 그 부침(浮沈)은 한마음으로 나타났다.

주춤하던 대구의 코로나19 확산세가 다시 고개를 들던 20일 오후 8시 23분. 권영진 대구시장이 오거돈 부산시장에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SOS를 보냈다.

“두 요양병원에서 확진 환자가 75명, 57명 발생했습니다. 이분들은 거동이 불편하거나 와상환자들이라 지역 내 병원만으로는 해결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염치 불고하고 시장님께 부탁을 드립니다. 몇 명이라도 받아 줄 병상을 지원해 주실 수 없을는지요?”

오 시장은 “늘 응원하는 마음입니다. 이미 말씀드렸듯 우리는 언제, 누구든 모시기로 했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라며 권 시장을 다독였다.

21일에는 오 시장이 권 시장에게 “힘내세요. 일단 와상환자 20명을 수용하기로 하고 실무협의 중”이라고 했고, 권 시장은 “안타깝고 힘든 시간의 연속이지만 더 힘내서 방역에 최선을 다하겠다”며 고마워했다.

22일 대구의 요양병원 확진자 10명이, 24일에는 4명이 부산으로 이송됐다. 전부 입원치료가 쉽지 않은 환자들이었다. 이들의 부산 수용에 대해 대구지역 의료진은 감동했고, 일부 직원은 눈물을 흘렸다는 소식도 들렸다. 이들은 고령으로 건강상태가 안 좋아 식사부터 배변까지 모든 수발이 필요한 환자들이었다. 이 중 2명은 28, 30일 각각 사망했다.

대구에서 코로나19 감염자가 쏟아질 때 청도대남병원의 중증환자 2명, 포항의료원의 위중환자 1명이 부산대병원으로 이송됐다. 이 중 1명은 도착하자마자 사망했다. 이때는 부산도 집단 감염사태가 벌어져 병원 환경이 어려웠다. 하지만 부산 의료진의 헌신적인 돌봄으로 이들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대구시민들의 자발적인 발길도 끊이지 않았다. 대구의 한 여성(41)은 지난달 딸(8)과 함께 부산의 친정으로 와 완쾌될 때까지 병원 신세를 졌다. 한 남성(43)은 대구 가족 4명이 확진되자 피신하다시피 부산으로 와 6차례 검사 끝에 양성 판정을 받고 치료 뒤 28일 퇴원했다. 직접 차를 몰고 와 입원한 남성(74), 부산에서 검사만 받고 대구로 돌아가 양성 판정을 받은 부녀도 있었다.

현재 코로나19로 부산의 병원에 입원하고 있는 환자 44명 가운데 15명(34.1%)이 대구경북 지역 환자다. 부산시는 대구경북 지역 환자를 위해 중증용 20병상, 경증용 70병상을 준비해뒀다. 부산에서 대구경북에 지원한 성금과 성품은 9억200만 원 상당이다.

권 시장이 26일 과로와 스트레스로 쓰러지기 전 SNS 대화에서 “하루빨리 이 전쟁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가 추억처럼 오늘을 얘기할 수 있었으면 하는 맘 간절합니다”라고 하자 오 시장은 “최선을 다해봅시다. 가능할 때까지 도와드릴게요”라며 응원했다.

영남의 두 맹주에게 코로나19를 극복하기 위한 ‘사회적 거리 두기’는 오히려 ‘마음의 거리 좁히기’였다. 이를 계기로 부산과 대구가 ‘나’를 넘어 ‘우리’로 더욱 단단한 공동체가 되길 기대한다.
 
조용휘 부산경남취재본부장 silent@donga.com
#코로나19#사회적 거리 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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