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칼럼으로 본 세상]‘무효’ 부르는 투표용지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4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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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4·15총선에선 역대 가장 긴 투표용지가 등장한다. 비례대표 선거 참여 정당이 35개가 되면서 투표용지 길이는 48.1cm가 됐다. 투표지 길이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기표란의 세로 폭이 1cm에 불과하고 기표란 사이 여백도 0.2cm로 좁아진다. 눈이 나쁘거나 손놀림이 둔하면 제대로 찍기가 어려울 것 같다.

2017년 19대 대선 때도 기표란이 좁아 고령자들을 중심으로 무효표가 늘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당시 후보 15명이 출마하자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기표란의 세로 폭을 1.5cm에서 1cm로 줄였다. 기표란의 세로 폭은 기표 도장의 외곽 지름보다 작았다. 투표용지에 찍히는 동그란 문양은 기표란 안에 들어가는 크기였지만 고령자나 장애인들은 기표란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찍느라 애를 먹었다. 실제로 당시 무효표는 13만5733표로 18대 대선(12만6838표) 때보다 많았고, 무효투표율이 높은 상위 10개 시군구의 65세 이상 고령비율(평균 28.1%)은 하위 10개 지역(15.2%)보다 높았다.

세계적으로 투표용지 디자인 논란이 뜨거웠던 선거는 후보 10명이 경쟁한 2000년 미국 대선이다. 미국은 선거구마다 투표용지가 제각각인데, 플로리다주 팜비치 카운티는 민주당 지지층인 유색인종이 낯설어하는 펀치식이었다. 더구나 민주당 후보 앨 고어의 이름과 펀치로 뚫는 구멍의 위치가 나란하지 않게 투표용지가 설계됐다. 구멍을 두 개 뚫어 무효 처리된 6만2000표 중 4만5000표에 고어 이름이 포함돼 있어 고어를 찍으려다 실수하자 다시 구멍을 뚫은 표로 추정됐다. 고어는 플로리다주에서 공화당 조지 W 부시에게 537표 차로 지는 바람에 대권을 놓쳤다.

문맹률(글을 읽거나 쓸 줄 모르는 사람의 비율)이 높은 나라에선 후보자의 얼굴 사진과 정당 로고가 들어간 커다란 투표용지를 쓰기도 한다. 얼굴 사진을 쓰면 외모가 훌륭한 후보, 젊은 후보가 유리하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2014년 시도지사와 교육감 등 7개 단체장을 뽑는 6·4지방선거 땐 투표용지가 7장이었다. 선거별로 투표용지 색상을 달리했는데, 적록 색맹(붉은색과 녹색을 구분하지 못하는 색맹)의 경우 색상 구분이 불가능한 것으로 뒤늦게 밝혀져 논란이 됐다.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어렵게 투표장에 나와 한 표를 행사했는데 투표용지 탓에 무효표가 돼 버리는 일은 결코 있어선 안 된다. 나이와 장애에 관계없이 누구나 쉽게 선거에 참여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공정하고 섬세한 선거 정책이 필요하다.

동아일보 4월 1일자 이진영 논설위원 칼럼 정리


칼럼을 읽고 다음 문제를 풀어 보세요.

1. 다음 중 본문을 읽고 보일 반응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을 고르세요.

① 2017년 19대 대선 때는 기표란이 좁아 기표 도장이 기표란 안에 들어가지 못했구나.

② 기표란이 좁으면 고령의 유권자들이 투표하기 어렵겠어.

③ 우리나라 19대 대선 무효표는 18대 대선보다 1만 표 가까이 많았구나.

2. 본문에서 언급된 4·15총선 투표용지의 길이는 48.1cm입니다. 35개 기표란의 세로 길이가 1cm, 각 기표란 사이 여백이 0.2cm라면 투표용지의 위와 아래를 합친 여백의 길이는 얼마일까요? 식을 쓰고 답을 구해 보세요.

김재성 동아이지에듀 기자 kimjs6@donga.com
#투표용지#4·15총선#무효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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