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각·미각이 사라졌다…넷플릭스로 버텨” 20대 英유학생 투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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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년 4월 18일 09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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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씨가 약2주간 머물며 치료받은 포천의료원의 1인 병실.© 뉴스1
박씨가 약2주간 머물며 치료받은 포천의료원의 1인 병실.© 뉴스1
“걸릴 줄은 몰랐는데 황당했죠. 밥을 먹어도 맛이 전혀 안나고 숨을 쉬어도 코가 막힌 기분이 들었을 땐 신기하기까지 했어요.”

신체 건강한 20대 젊은 나이에 갑자기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감염병에 걸린다면 과연 어떤 기분일까. 영국에서 입국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고 완치 퇴원한 박모씨(21)는 이렇게 소감을 전했다.

◇“후각·미각 사라져”…‘무증상 입국’ 후 확진 판정

박씨가 처음 코로나19 증상을 느낀 것은 지난달 19일 영국에서부터다. 영국 런던에 위치한 인 예술학교인 트리니티 라반(Trinity Laban)에서 작곡을 전공하는 박씨는 코로나19 여파로 학교시설이 폐쇄된 뒤 자택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러던 중 발열, 몸살 등 감기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이후 기침, 인후통 등 호흡계통 증상을 겪었다. 이어 미각과 후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박씨는 학교 수업이 온라인으로 전환되고 시설이 폐쇄되자, 곧장 한국으로 들어오기로 결심한 상태였다. 현지 상황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었고 코로나19에 걸리더라도 현지 의료 상황상 치료를 받을 여건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증상이 나타난 뒤 박씨는 부모님의 만류로 귀국 일정을 고민했다고 한다. 그는 “오히려 어머니는 다 나으면 들어오라고 하셨다”며 “저도 그게 나을 것 같다는 판단 하에 일단 자가치유하기로 했다. 그러다 열이 내리고 증상이 없어져 귀국 항공편을 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입국 당시인 지난 1일에도 박씨는 ‘무증상 상태’였다. 하지만 무증상자도 3일 이내 지역 진료소에서 진단검사를 받아야 하는 강화된 유럽발 입국자 방역 조치에 따라 박씨도 자택이 있는 경기도 가평군 관내 진료소에서 검사를 받았다. 이 때 확진판정을 받고 곧장 병원으로 이송됐다. 그는 “코로나에 걸린 줄도 몰랐지만 전혀 증상이 없어 걸렸더라도 당연히 나은 줄 알았다”고 말했다.

◇“넷플릭스 없었다면 상상 안돼…의료진과는 페이스톡”

확진 판정을 받은 순간부터 박씨는 세상과 격리됐다. 가족, 지인과의 만남은 금지되며 유일하게 방호장비로 무장한 의료진만이 박씨와 마주할 수 있었다. 20평 남짓한 1인 격리실에는 음압기를 비롯, 침대, TV가 전부였다. 병실 한 구석에는 CCTV가 설치돼 24시간 감시받았다.

박씨는 “아침 8시, 오후 12시, 오후 6시 3번 식사가 오는 것, 그리고 식사 30분 전 혈압, 온도 체크하는 게 다여서 하루일과라 할만한 게 거의 없었다”며 “들어올 때 가지고 갔던 건 물건은 퇴원할 때 모두 소각한다고 들어 읽을 책도 없었다”고 말했다.

유일하게 허용된 전자기기만이 즐길거리이자, 소통창구였다. 눈 뜨고 잠 들 때까지 넷플릭스, 유튜브 등 영상만 봤다고 한다. 그외에는 하루 2번씩 SNS 매신저 페이스톡을 통해 의료진과 대화하는 게 전부였다. 격리 중이다 보니 혈압체크 등 기본적인 진료는 병실에 배치된 간이 의료장비들을 이용해 모두 ‘셀프’로 진행됐다.

다행히 박씨는 지난 12일 진행한 검사에서 음성 판정을 받고 지난 14일 퇴원했다. 격리치료가 시작된 지 12일만이다. 그는 “맑은 바깥 공기 쐐는 게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이라며 “며칠은 가만히 쉬고 아무것도 안하니까 편했지만 일주일이 넘어가니 그마저도 지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가평 1호 확진’ 낙인에 모친 심경 글도…“지역민 알 권리 위해”

박씨는 경기도 가평군에서 발생한 첫 코로나19 확진환자다. 현재까지도 가평군은 박씨 외에 추가 확진자가 없을 정도로 ‘코로나 청정지역’으로 꼽힌다. 하지만 이 때문에 박씨와 그의 가족은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바로 박씨가 해외에서 입국한 유학생이기 때문이다.

특히, 박씨를 둘러싼 추측성 말들과 악의적인 글들이 온라인 상에 떠돌며 마치 죄인이 된듯한 기분이었다고 한다. 그는 “제가 들어오고 나서 가족들이 많이 힘들어 했다”며 “저로 가족들은 물론 다른 사람들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에 박씨의 모친은 아들의 확진 소식을 전해 듣고도 놀란 마음을 진정하고 가평지역 커뮤니티에 솔직한 심정 글을 올렸다. 지역 특성상 소문이 삽시간에 퍼진다는 사실에 무엇보다 정확한 경위와 정보를 지역민들에 알려줘야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글에 따르면, 박씨는 영국에서 출국 전 집에서 기내에서까지 마스크를 착용하고 비닐장갑을 꼈다. 입국 시 관내 진료소에서 확진 판정을 받기까지 접촉자는 그의 모친 단 한명이었다. 자택엔 노모가 있었지만 박씨는 가족들이 다니지 않는 길로 방에 들어갔을 정도로 접촉방지에 신경썼다고 한다. 모친 역시 외부인 접촉 없이 아들이 확진 판정을 받은 3일 진단검사에서 음성 판정을 받았다.

박씨 또한 유학생에 대한 세간의 부정적인 여론을 익히 알고 있다. 그는 “일부 유학생들의 일탈은 비난받아 마땅하다”며 “정부가 강제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부분은 없을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불특정 다수에서 일탈이 발생한 것 같다. 그래서 더 조심스레 행동한 것도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박씨는 가평군 자택에 머무르며 다음 학기를 준비하고 있다. 5월 영국으로 돌아갈 예정이었지만 사태가 장기화되는 만큼 국내 머무르며 온라인 수업을 통해 학업을 이어나갈 계획이다. 그는 “영국에 있었다면 코로나였는지도 몰랐을 거고 치료 기회조차 없었을 것”이라며 “치료받을 수 있는 것 자체에 감사함을 느꼈고, 도움 주신 모든 분들게 감사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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