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하철 8호선 복정역 인근 송파구자원순환공원에 자리한 재활용선별업체 A사의 직원들은 출근과 동시에 ‘쓰레기산’을 마주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영향으로 택배와 배달음식 소비가 증가하면서 재활용쓰레기 반입량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송파구자원순환공원에서 하루에 처리할 수 있는 재활용쓰레기양은 70t. 하지만 3월에는 하루 평균 87t의 쓰레기가 반입됐다. 처리용량을 24% 초과한 규모로, 모두 송파구 내 아파트단지를 제외한 단독·다가구주택 등에서 발생한 쓰레기였다. 결국 직원들은 한 달에 한 번꼴로 일요일에 출근해 초과분을 처리하고 있다. A사 관계자는 “배달음식 용기는 시민들이 음식물이 묻은 상태로 버리는 경우가 많아 재활용하기가 어렵다”며 이마를 짚었다.
‘쓰레기산’ 처리하려 일요일에도 출근
사회적 거리두기로 부상한 언택트 소비가 재활용쓰레기업계의 골칫덩이가 되고 있다. 종이상자와 스티로폼 등 택배 포장재와 플라스틱 용기 사용이 늘어 재활용쓰레기 물량이 증가했지만, 코로나19발(發) 경기침체로 정작 이를 활용할 기업이 마땅히 없기 때문이다. 공급은 느는데 수요는 줄다 보니 재활용쓰레기 가격 역시 하락했다. 한국환경공단에 따르면 폐지와 폐플라스틱(PE·PP), 스티로폼은 3월 들어 지난해 대비 5~20% 시세가 하락했다. 업계에서는 “2018년 중국이 쓰레기 수입을 거부하면서 발생한 ‘쓰레기 대란’과 같은 상황이 다시 오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A사도 ‘쓰레기 직격탄’을 맞은 곳 가운데 하나. 건축자재로 재활용되는 스티로폼은 최근 두 달 사이 판매가가 반 토막 났다. A사 관계자는 “코로나19로 건설시장이 위축되면서 건축자재에 대한 수요도 줄었다. 수거업체가 다음달부터는 스티로폼을 가져가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해 고민이 많다”고 전했다. 전체 쓰레기 반입량의 60%를 차지하는 폐지 역시 상황이 좋지 않다. 폐지 가격이 급락하면서 2018년 말 대비 3분의 1 가격만 받고 처리하고 있다.
‘돈 안 되는’ 쓰레기의 유입 물량은 크게 늘었다. 송파구자원순환공원으로 들어오는 쓰레기양은 매년 5~10%가량 완만하게 증가한다. 하지만 2~3월 쓰레기양이 급증해 올해 증가율은 40% 이상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송파구청 역시 늘어나는 쓰레기를 예의 주시하지만 뾰족한 대책은 없는 상태. A사 관계자는 “회사 차원에서 인력 추가 고용, 선별라인 증설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양대 옆에 위치한 서울 성동구재활용선별장도 쏟아지는 쓰레기로 고역을 치르기는 마찬가지. 이곳에는 성동구와 종로구에서 발생하는 재활용쓰레기가 하루 평균 55t 반입된다. 하지만 코로나19로 택배 물동량이 늘면서 2월 중순 이후 하루 쓰레기 유입량이 60t으로 증가해 일터 분위기가 예전 같지 않다. 이곳 관계자는 “특히 택배 포장재 쓰레기가 크게 늘어 직원들이 주3일씩 2시간 초과근로를 하고 있다. 작업량이 많아지다 보니 직원들이 예민해졌다. 하지만 쓰레기 증가가 일시적 현상일 수 있어 섣불리 인력을 충원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세계 공장 가동 중단에 국제유가 하락으로 ‘이중 타격’
코로나19로 세계경제가 멈춰선 것도 재활용쓰레기 대란 우려를 부채질한다. 국제유가 하락에 코로나19로 인한 해외 공장 가동 중단이 겹치면서 재활용쓰레기의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환경부 산하 한국순환자원유통지원센터에 따르면 국내 페트병의 절반가량은 유럽과 미국 공장에서 재생섬유로 재가공된다. 한국순환자원유통지원센터 관계자는 “업계는 최근 유럽과 미국 공장이 멈춘 바람에 재활용쓰레기 수출이 막히고 있다고 호소한다. 게다가 국제유가 하락으로 플라스틱 재활용품 수요마저 줄어 3월 말 기준 30~40%의 페트병이 수출되지 못하고 국내에 묶여 있다”고 설명했다. 3월 4일 배럴당 51달러였던 국제유가는 한 달 사이 24달러로 폭락했다. 유가가 하락하면 플라스틱 제조업체는 재활용품 대신 원유를 가공해 상품을 생산하는 것을 선호한다.
배달음식 용기로 사용된 폐플라스틱의 처리도 난관에 부딪쳤다. 폐플라스틱 용기는 해외로 수출되지 않고, 배수관 파이프나 팰릿(화물운반대)으로 재활용돼 국내에서 소비된다. 건설현장과 물류창고가 주요 사용처. 한국순환자원유통지원센터 관계자는 “국내 공장은 해외와 달리 가동 중단까지는 안 돼 사정이 나은 편이다. 하지만 폐플라스틱 용기가 전년 대비 150% 증가한 반면, 건설 경기침체 등으로 폐플라스틱 수요는 그만큼 늘지 못해 적체가 발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가공업체는 경기침체를 이유로 재활용쓰레기를 받지 않지만, 구청과 계약 때문에 쓰레기를 수거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다. 코로나19로 중국 수출이 막혀 폐플라스틱을 쌓아놓고 있다. 제지업체가 넘치는 폐지 공급을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이라 폐지도 몇천t을 보관하고 있다. 가격은 나날이 떨어지는데, 보관량은 늘다 보니 보관 공간이 부족해 걱정이 크다.”
서울 양천구에서 재활용쓰레기를 수거하는 OO자원 관계자의 말이다. 재활용쓰레기 재고 증가는 다시 ‘쓰레기 값’ 인하를 견인해 악순환을 일으킨다. 한국환경공단이 3월 발표한 ‘재활용가능자원가격조사’에 따르면 폐지나 폐플라스틱의 가격은 2015년 이후 꾸준히 하락하는 추세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이들 재활용쓰레기의 가격은 매달 최저가를 경신하고 있다.
환경부 대책은 ‘주민 선의’에 기대기?!
환경부는 4월 13일 재활용시장 안정화 추진 계획을 내놓으면서 쓰레기 적체에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현장 반응은 미지근하다. 환경부 대책의 핵심은 ‘가격연동제’. 재활용쓰레기의 시세 변동에 맞춰 150가구 이상 공동주택(아파트) 대표와 수거업체가 한시적으로 계약 내용을 수정할 수 있도록 해 수거업체의 손실을 최소화하는 제도다. 문제는 공동주택이 ‘자발적’으로 이윤을 포기해야 계약 수정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환경부는 2018년 가격연동제 내용을 담은 ‘공동주택 재활용품 관리지침’을 발표했지만 이는 권고 사항에 불과하다. ‘주간동아’가 확인한 결과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공동주택관리규약 준칙에 가격연동제를 명시한 곳은 3곳(인천·전북·충남)에 불과했다.
서울 송파구 잠실동의 한 아파트 단지 입주자대표와 재활용쓰레기 수거 계약을 맺은 김모(55) 씨는 “공무원들은 책상 앞에만 앉아 있지 말고 재활용쓰레기 처리 현장에 직접 나와 봐야 한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쓰레기 단가가 떨어져 인건비조차 나오지 않고 있다. 위약금이 무서워 계약을 물리지도 못한다”며 “속이 쓰려 아파트 관리사무소장에게 사정해보지만 그 사람이라고 무슨 힘이 있겠나. 입주자대표가 계약서 내용을 바꾸지 않겠다고 하면 할 말이 없다”고 한탄했다.
김주식 서울시립대 환경공학부 교수는 “중소업체가 재활용쓰레기 처리를 담당하다 보니 위기 상황에 대응하는 데 어려움이 크다. 특히 전 국민의 절반이 거주하는 아파트는 지방자치단체(지자체)의 소관 밖에 있어 지자체가 쓰레기 문제에 탄력적으로 대응하기도 어렵다”며 “아파트와 업체 간 자율계약에만 맡기지 말고 정부와 지자체가 통일된 프로세스에 따라 재활용쓰레기를 처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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