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도시철도 기종 변경이 해외 수출길 막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4월 22일 03시 00분


임용택 KAIST교수 자전적 에세이
‘디테일 경쟁시대’서 비화 소개

2015년 7월 20일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데이드 카운티 시장실. 임용택 당시 한국기계연구원장(왼쪽에서 세 번째)이 건넨 자기부상열차 제안서를 카를로스 히메네스 시장(왼쪽에서 네 번째)이 유심히 살피고 있다. 임용택 KAIST 교수 제공
2015년 7월 20일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데이드 카운티 시장실. 임용택 당시 한국기계연구원장(왼쪽에서 세 번째)이 건넨 자기부상열차 제안서를 카를로스 히메네스 시장(왼쪽에서 네 번째)이 유심히 살피고 있다. 임용택 KAIST 교수 제공
“모르모트.”

임용택 전 한국기계연구원장(현 KAIST 교수)은 “이 말이 나왔을 때 협상은 이제 물 건너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고했다. 2015년 7월 20일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데이드 카운티의 카를로스 히메네스 시장실에서의 일이다. 모르모트(marmotte)는 실험동물을 의미한다. 임 전 원장이 최근 펴낸 자전적 에세이 ‘디테일 경쟁시대―한국 과학기술 발전을 위한 제언’에 나오는 당시의 협상 비화다.

○ ‘자국 찬밥’ 자기부상열차 쓰라린 경험

임 전 원장은 당시 마이애미 일대 30km 구간에 건설할 도시형 교통수단을 찾던 히메네스 시장에게 한국기계연구원(KIMM)이 개발한 자기부상열차를 제안했다. 국내에서는 ‘한국산 자기부상열차가 세계적인 휴양도시 마이애미 비치에서 달릴까’라는 기대 섞인 보도도 나왔다. 하지만 히메네스 시장은 “한국 자기부상열차의 우수성은 인정한다. 하지만 우리가 ‘모르모트’ 신세가 되는 것은 아닌지”라며 의아해했다. 임 전 원장은 “대전시가 도시철도 2호선 교통수단으로 우리 연구원의 자기부상열차를 선택했다가 갑자기 무산시킨 것을 이르는 것이었다. 히메네스 시장 자문역이 그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상세한 보고를 받았다”며 “자국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제품을 신뢰하지 않은 히메네스 시장의 태도는 정책 결정자로서 너무나도 당연했다”고 말했다.

당시 대전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대전시는 1996년 자기부상열차로 도시철도 2호선을 건설하겠다는 정부 승인을 받았다. 2012년 예비타당성 조사가 통과돼 2014년경 건설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하지만 같은 해 6월 지방선거에서 트램을 대안 교통수단으로 공약한 권선택 후보가 대전시장에 당선돼 상황이 바뀌었다. 권 당시 시장은 기종 교체에 대한 시민과 대덕특구 연구기관들의 우려가 높아지자 여론을 더 수렴하겠다고 했고 결국 당초 공약을 밀고 나갔다.

○ 지역사회가 과학기술 동반자 돼야


기계연구원의 자기부상열차는 국산화 비율이 97%를 넘으면서도 성능이 세계 최고 수준이었던 개발 성공 사례 중 하나다. 이 연구원에서 15년 이상 자기부상열차를 연구한 한형석, 김동성 박사는 세계 최초로 이를 주제로 국제학술서적을 외국 출판사에서 발간하기도 했다. 단기 투자가 문제점으로 지적돼온 국내 연구개발 역사에서도 귀감이었다. 임 전 원장은 “1989년 개발 착수 이후 경제성 전망에 대한 우려와 주무 부처 및 차량 제작사의 변경 같은 어려움이 속출했다. 하지만 연구개발비 1500억 원을 포함해 총사업비 5000억 원이 꾸준히 투자됐다”며 “이례적으로 장기적인 투자와 지원 덕분에 결실을 맺은 사업”이라고 전했다.

자기부상열차는 2016년 2월 세계에서 3번째로 인천국제공항에서 도시형 자기부상열차로 상용화됐다. 소음과 진동이 적고 분진이 없어 환경 친화적인 데다 승차감 역시 우수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마이애미 해변의 교통수단으로 채택됐을 경우에 비할 바는 아니라고 과학기술계는 보고 있다. 임 전 원장은 “당시 마이애미 당국이 대전시의 기종 변경만을 문제 삼아 우리의 제안을 수용하지 않았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중대한 기피 사유의 하나였던 것은 확실해 보인다”며 “‘과학도시’를 슬로건으로 내건 대전시가 ‘테스트 베드(test bed)’와 지원군 역할을 하지 않아 아쉽다”고 했다. 기본계획 변경 승인을 앞둔 트램은 2022년 착공돼 2025년 완공될 것으로 전망된다.
 
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대전#도시철도#자기부상열차#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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