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 없는 자연휴식년제… 제주 오름이 망가진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4월 22일 03시 00분


도로 가까워 접근 쉬운 용눈이오름… 맨흙 드러나고 주변 식물 말라죽어
제주도, 휴식년제로 일반인 출입통제… 객관적 기준 없어 ‘땜질식 처방’ 지적

선의 미학을 대표적으로 보여 주는 제주시 구좌읍 용눈이오름에 탐방객이 몰리면서 훼손 면적이 넓어지고 있지만 체계적인 보전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채 땜질 처방만을 반복하고 있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선의 미학을 대표적으로 보여 주는 제주시 구좌읍 용눈이오름에 탐방객이 몰리면서 훼손 면적이 넓어지고 있지만 체계적인 보전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채 땜질 처방만을 반복하고 있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20일 오후 제주시 구좌읍 종달리 해발 248m 정도의 야트막한 화산체인 용눈이오름에 탐방객이 줄을 이었다. 오름 정상에서 성산일출봉, 우도는 물론이고 인근 다랑쉬오름, 손지오름이 한눈에 들어왔다. 한가로이 풀을 뜯는 말이 제주와 어울리는 목가적인 풍경이었다. 하지만 용눈이오름은 오르기에 큰 부담이 없을 뿐 아니라 ‘선(線)의 미학’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오름으로 알려진 이후 몸살을 앓고 있다. 야자매트를 깐 탐방로 인근은 맨 흙이 드러나면서 식물이 말라죽었다. 훼손이 심해진 탐방로를 폐쇄하고 오름 정상으로 가는 탐방로가 새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오름 정상은 화산쇄설물인 검붉은 빛의 스코리아층(일명 송이)이 드러났고 훼손 면적은 더 늘어나고 있다.

인근 백약이오름도 탐방로 주변의 흙이 드러날 정도로 훼손됐다. 제주 서부지역을 대표하는 새별오름은 들불축제 명소로 이름이 알려지면서 탐방객이 갈수록 늘고 있다. 녹고뫼오름과 궷물오름 역시 답압(踏壓)에 의한 훼손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좁은 탐방로에 한꺼번에 많은 탐방객이 몰리면서 길이 넓어졌고 주변 식생이 파괴되고 있다.

땔감이나 산나물을 얻는 우마방목지 정도로 인식됐던 오름은 1990년대 이후 자연환경이나 인문 분야에서 중요한 자원으로 조명을 받았다. 제주의 비극인 4·3사건의 현장이었고 일제강점기에 오름은 거대한 땅굴 진지였다. 빗물을 정화시켜 청정 지하수를 만드는 필터링 역할도 한다. 오름은 한동안 기생화산으로 불렸으나 독립적인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밝혀진 이후 지금은 높은 봉우리 또는 언덕 지형의 ‘작은 화산체’로 정의한다. 한라산 백록담을 제외하고 368개가 산재해 있다. 오름이 없었다면 제주지역이 세계자연유산, 생물권보전지역, 세계지질공원 등 유네스코 자연과학 분야 3관왕 타이틀을 얻기는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

화산폭발로 생긴 오름은 무너지기 쉬울 뿐 아니라 한번 무너지면 복원하기 힘든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이들 오름은 도로에서 가까워 접근이 쉽다는 공통점이 있다. 제주시는 최근 용눈이오름에 대해 현장점검을 벌이기로 했지만 체계적인 대책 마련 없이 ‘땜질식 처방’이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제주도는 오름식생을 복원하기 위해 2008년 도너리오름, 물찻오름, 2015년 서귀포시 송악산 정상부, 지난해 제주시 문석이오름 등 모두 4곳에 자연휴식년제를 적용해 일반인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하지만 자연휴식년제 적용 오름을 선정하는 객관적인 기준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있다. 2017년 제정한 ‘제주도 오름 보전 및 관리에 관한 조례’에 따라 보전·관리위원회를 구성해 기본계획수립 및 기초조사, 지속가능한 관리방안 등을 자문하기로 했으나 지금까지 구성되지 않았다. 자연휴식년제 시행에 따른 규칙 역시 만들어지지 않았다.

제주도 관계자는 “조만간 환경, 동식물, 지형·지질, 생태관광 전문가로 보전·관리위원회를 구성하겠다”며 “내년에 광범위한 오름 조사를 실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자연휴식년제#제주 용눈이오름#백약이오름#훼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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