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폭영화처럼… 외국인 ‘대낮 칼부림’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4월 22일 03시 00분


광주 거주 카자흐스탄 노동자들, 여자문제로 갈등 빚다 집단 패싸움
경찰, 추가 범죄 우려 체포 작전 특공대 투입 20명 검거… 4명 영장
“폭행 가담 11명 모두 불법체류자”

광주 광산경찰서 © News1
광주 광산경찰서 © News1
19일 오후 4시 20분 광주 광산구 월곡동의 한 도로. A 씨(25) 등 5명이 탄 차량 2대가 갑자기 B 씨(23)가 운전하던 차량을 앞뒤로 가로막았다. B 씨가 당황스러워하며 차량에서 내리자 이들은 다가가 폭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일행 중 한 명은 급기야 흉기를 꺼내 B 씨의 오른쪽 허벅지를 찔렀다. B 씨는 바닥에 쓰러졌고 A 씨 등은 차량을 타고 달아났다. 우연히 순찰을 돌던 경찰이 B 씨를 발견했고 119구급대에 연락해 병원에 보냈다. 앞서 이날 0시 5분경 월곡동의 한 술집 인근에서 B 씨의 지인 등 6명이 A 씨의 지인 1명을 둔기로 집단 폭행했다.

A 씨와 B 씨는 모두 국적이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이다. 카자흐스탄은 다수 민족인 카자흐계와 소수민족인 아제르바이잔계 등 여러 민족이 함께 사는 다민족 국가다. A 씨와 지인들은 아제르바이잔계이고 B 씨와 지인들은 카자흐계이다. 양측은 지난해 10월부터 여자 문제로 갈등을 빚어 왔다. A 씨 지인들이 B 씨 지인들이 사귀던 여성과 관련해 공개적으로 창피를 주며 놀리기 시작했고 급기야 A 씨 지인이 사귀던 여성을 B 씨 지인이 따로 만나면서 양측은 주먹다짐까지 벌였다. 이달에만 이들 사이에서 폭행사건 4건이 발생했다.

광주 광산경찰서는 집단 보복 폭행 등이 추가로 발생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일단 폭행에 가담했던 이들을 붙잡기로 했다. 경찰특공대 등 250명을 투입해 월곡동의 한 주택에 모여 있던 카자흐계 남성 20명을 붙잡았다. 경찰은 이들 가운데 폭행에 적극 가담한 카자흐계 4명에 대해 특수상해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검거한 20명 중 9명은 불법 체류자로 드러났고 추방 조치가 내려졌다. 나머지 합법적인 체류자로 폭행에 적극 가담하지 않은 이들은 일단 풀어줬다.

경찰은 또 흉기를 휘두르고 폭력을 행사한 A 씨 지인 등 아제르바이잔계 4명을 붙잡아 22일 특수상해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 경찰은 이 밖에 아제르바이잔계 1명 등 외국인 근로자 3명에 대해서도 추가 검거에 나섰다. 경찰 관계자는 “폭행에 가담한 외국인 11명은 모두 불법 체류자였다”고 말했다.

월곡동에는 2000년대 초부터 옛 소련에서 거주하던 고려인들이 들어와 정착하기 시작했다. 현재 이 일대에는 4700여 명의 고려인이 거주하며 작은 러시아 마을까지 형성했다. 고려인들뿐만 아니라 카자흐스탄 아제르바이잔 우즈베키스탄 등 옛 소련 출신 근로자들도 월곡동 일대에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들은 인근 농촌이나 산업단지 등의 일자리를 오가며 살고 있다.

하지만 종교 언어 문화 관습 등이 달라 크고 작은 갈등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폭행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인근 주민들은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다. 고려인 마을의 한 주민은 “최근 일터에 나가지 않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많아졌다. 덩달아 생활고를 겪는 상황도 늘면서 크고 작은 다툼이 잦아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광주=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대낮 칼부림#카자흐스탄#불법체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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