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 간판 달던때 주인 설렘 생각하니…” 말잃은 철거 직원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4월 22일 03시 00분


줄폐업에 철거업체 씁쓸한 호황
임시휴업 버티던 식당 결국 폐업… 주인 “두달간 임차료만 내 시원섭섭”
철거업체 “의뢰 건수 2, 3배 늘어… 다 잘돼야 하는데 좋지만은 않아”
문닫은 업소 정리비용도 큰 부담… “영세업자 폐업 지원금 확대해야”

20일 오후 1시경 경기 부천시에 있는 한 식당. 철거업체 직원이 폐업한 식당 내부 벽면에서 나무판자를 떼어내고 있다. 부천=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20일 오후 1시경 경기 부천시에 있는 한 식당. 철거업체 직원이 폐업한 식당 내부 벽면에서 나무판자를 떼어내고 있다. 부천=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두 달 동안 손님도 없이 임차료만 빠져나갔는데… 에휴, 마음이 참 복잡하네요.”

20일 오후 2시경 경기 부천에 있는 한 식당.

실은 ‘식당’이라 부르기엔 이미 형체도 찾기 힘들었다. 오전 7시부터 시작한 철거 작업이 벌써 막바지에 이르렀기 때문. 19평(약 62.8m²) 남짓한 식당 바닥엔 홀과 주방을 부수며 떨어진 식기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사장 김모 씨(44)는 애써 “시원섭섭하다”며 웃어 보이려 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식당 간판이 떨어져 나가자, 그는 고개를 돌린 채 허공을 쳐다봤다.

최근 국내에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상당히 줄어드는 모양새다. 정부의 사회적 거리 두기도 다소 완화돼 문을 여는 업소들도 늘었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경제 코로나’는 이제부터 시작이란 절규도 만만치 않다. 급증하는 영세 자영업자들의 폐업이 대표적인 사례다.

김 씨가 부천에 가게를 낸 건 2016년 9월. 경기는 줄곧 나빴지만 나름 단골도 늘며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올 초 코로나19에 모든 게 휩쓸려 가버렸다. 2월부터 임시휴업까지 강행하며 버텼지만 매달 200만 원의 임차료는 빚으로 쌓여 갔다. 결국 김 씨는 15일 폐업 철거업체에 전화했다.

“그나마 전 사정이 나은 편이죠. 이달에 계약이 종료돼 이렇게 빠져나갈 수라도 있으니. 보증금 받으면 어떻게든 생계를 유지할 방편을 찾아봐야죠. 옆에 있는 횟집 보이죠? 거기도 3개월째 휴업 중인데 계약 기간이 남아서 짐도 못 빼는 형편이에요. 이 상가에서만 최근에 4곳이나 폐업했습니다.”


실제로 요즘 철거업체는 때아닌 ‘호황’을 맞이했다. 김 씨의 철거를 맡은 A철거업체는 “요즘 철거 의뢰가 예전보다 2, 3배 늘었다”고 했다. 서울의 한 소상공인 폐업컨설팅 업체 역시 지난달 폐업 의뢰 건수가 258건으로 지난해 3월(86건)의 3배로 늘어났다. A업체 직원인 박상남 씨(54)는 “우리야 일이 늘어나긴 했지만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 솔직히 ‘씁쓸한 호황’이다”라며 “다들 처음 가게를 차릴 땐 얼마나 기대가 컸겠냐. 다 같이 잘돼야 하는데…”라며 말을 얼버무렸다.

폐업 자체도 힘든 결정이지만, 그마저도 영세업자들은 선뜻 택하기 어렵다. 철거비용이 만만치 않다. 수도권에서 키즈카페를 운영하는 박모 씨(39·여)도 최근 폐업을 마음먹었지만 돈 때문에 최종 결정을 못 내리고 있다. 박 씨는 “업체에 문의했더니 내부 철거와 원상 복구 비용만 최소 2000만 원이 들 거라고 했다”며 “오랜 임시휴업으로 임차료만 2000만 원 넘게 생으로 내느라 모아둔 돈도 다 떨어졌다. 돈 없어 폐업도 못 하는 어이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방자치단체 등에는 폐업지원금을 신청하는 자영업자들도 크게 늘었다. 서울시 자영업지원센터에 따르면 이달 9일부터 20일까지 12일간 총 75건이 접수됐다. 지난해 4월 한 달 동안 34건이었던 걸 감안하면 큰 폭의 증가다. 서울시는 490건 지원을 목표로 12억8000만 원을 책정했지만, 벌써부터 예산 부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철거업체 관계자는 “코로나19로 2, 3개월씩 영업을 못 한 자영업자에겐 철거비용 등이 큰 부담”이라며 “영세업자들을 대상으로 폐업지원금을 늘려 최소한의 살길이라도 터줘야 한다”고 했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코로나19#줄폐업#철거업체#영세업자#폐업 지원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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