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거돈, ‘업무 가르쳐달라’ 근무시간중 불러 집무실서 성추행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4월 24일 03시 00분


[오거돈 부산시장 사퇴]피해 여성 “집무실 불려간 건 처음”
吳 ‘선거후 사과’ 제안, 피해자 수용… 법무법인서 사실관계 공증받기도
작년 市산하기관 성희롱 불거지자 吳 “있을수 없는 일” 엄벌 지시

고개 숙인 오거돈 오거돈 부산시장이 23일 부산 연제구 부산시청 강당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사퇴 의사를 밝힌 뒤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있다. 오 시장은 기자회견에서 부산시 여성 공무원을 추행한 사실을 시인했다. 부산=박경모 기자 momo@donga.com
고개 숙인 오거돈 오거돈 부산시장이 23일 부산 연제구 부산시청 강당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사퇴 의사를 밝힌 뒤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있다. 오 시장은 기자회견에서 부산시 여성 공무원을 추행한 사실을 시인했다. 부산=박경모 기자 momo@donga.com
오거돈 부산시장의 사퇴를 부른 성추행 사건은 이달 초 부산시청 7층 집무실에서 일어났다. 평일인 이날 부산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으로 분주한 상황이었다. 당일 해외에서 입국한 여러 시민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데다 자가 격리 장소를 무단 이탈한 이들까지 있었기 때문이다. 오 시장도 이날 오전 8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의 코로나19 화상 회의에 참석한 뒤 집무실에 머무르고 있었다고 한다.

○ 코로나19 상황, 업무 시간 집무실에서

동아일보 취재에 따르면 오 시장은 당일 오전 11시 40분경 수행 비서를 통해 부산시청 소속인 한 여성 공무원을 집무실로 불렀다. 피해 여성은 23일 입장문에서 “(오 시장 집무실에 불려간 건) 처음 있는 일”이라며 “근무 시간이었고 업무상 호출이란 말에 서둘러 집무실로 갔으나 그곳에서 성추행을 당했다”고 밝혔다.

오 시장은 집무실에서 ‘업무를 가르쳐 달라’는 취지로 말하면서 실제로는 성추행을 했고 피해 여성은 반발한 것으로 전해졌다. 오 시장은 사건을 저지른 날 오후 3시 접견실에 사회복지법인 관계자들을 불러 성금 전달식을 열기도 했다.

오 시장은 사퇴하며 “피해 여성에게 사죄한다”고 밝혔지만 일부 표현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는 “불필요한 신체 접촉을 했는데, 해서는 안 될 강제 추행으로 인정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경중에 관계없이 어떤 말로도 어떤 행동으로도 용서받을 수 없다”고 했다. 피해 여성은 이에 대해 “그곳에서 발생한 일은 경중을 따질 수 없는 명백한 성추행이었고, 법적 처벌을 받는 성범죄였다”고 했다.

부산지방경찰청은 이날 긴급회의를 연 뒤 오 시장 사건을 여성청소년수사팀에 배당해 내사에 착수했다. 경찰 관계자는 “(오 시장이 스스로) 사퇴 기자회견에서 밝힌 내용에서 범죄 혐의가 있다고 판단해 사실 관계를 확인하는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경찰은 피해 여성이 이달 초 신고했던 부산성폭력상담소와 부산시 관계자 등을 대상으로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사건 발생 2주가 넘어, 총선 끝나고 사퇴


오 시장이 사퇴 의사를 밝힌 건 성추행 사건을 저지른 지 2주도 넘은 시점이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다른 배경이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피해 여성은 사건 직후 성추행 피해를 부산성폭력상담소에 신고한 뒤 “이달 안에 공개 사과하고 시장직을 사퇴하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이에 오 시장은 이를 따르겠다며 부산의 한 법무법인에서 피해 여성 가족의 입회하에 사실관계를 공증까지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오 시장 측은 4·15총선을 앞둔 상황을 감안해 선거가 끝난 뒤 절차를 진행할 것을 제안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 여성도 사건이 정치적으로 이용될 것을 우려해 이를 받아들였다고 한다.

하지만 오 시장은 총선이 끝나고도 일주일이 넘도록 사퇴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오 시장이 시간을 끌다가 성추행 사실이 언론에 보도될 가능성이 높아지자 어쩔 수 없이 사퇴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부산시 안팎에 따르면 오 시장 측이 관사에서 짐을 빼는 등 분주한 움직임을 보인 시점이 22일 저녁이었다고 한다.

오 시장은 재임 동안 성 관련 이슈에 엄정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왔다. 지난해 9월엔 “성희롱과 성추행을 뿌리 뽑겠다”고 했다. 관내 일자리지원센터에서 센터장이 여직원들을 성희롱하는 사건이 일어나자 “향후 이런 문제가 일어나면 가능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최대한 엄벌하겠다”고 했다. 오 시장은 “지위가 낮은 직원을 대상으로 성희롱이나 성추행을 저지르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도 했다. 지난달 8일 세계 여성의 날엔 자신의 페이스북에 “여성의 행복이 곧 부산의 행복”이라고 올렸다.

부산성폭력상담소는 23일 오 시장의 사퇴에 대해 “어느 정도 예견할 수 있었던 일”이라고 평가했다. 오 시장이 2018년 11월 14일 한 회식 자리에서 양옆에 여성 직원들을 앉힌 사건을 거론하며 “낮은 성 인지 감수성과 이를 성찰하지 않는 태도는 언제든 성폭력 사건으로 불거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10월 한 유튜브 채널에서 ‘여성 공무원 성추행 사건을 은폐했다’는 취지로 의혹을 제기하자 오 시장은 “소가 웃을 일”이라며 해당 동영상 출연자들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고 5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내기도 했다.

오 시장은 2018년 6·13지방선거에서 당선됐다. 1995년 민선 자치단체장 선거가 실시된 뒤 보수 정당 소속이 아닌 부산시장은 그가 처음이었다. 부산시는 이날부터 변성완 부산시장 권한대행 체제에 들어갔다.

부산=조용휘 silent@donga.com·강성명 / 조건희 기자
#오거돈 부산시장#성추행 사건#4·15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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