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거리두기 연장에 집에서 풀어보는 학평
여의도여고 30분 동안 190명 중 185명에 배부
절반이상은 부모 차 타고 '드라이브 스루' 이용
'워킹스루' 택한 학생들도 줄 서 기다리지 않아
교사와 학생 접촉 수 초…"시간 맞춰 풀어야 해"
“선생님 안녕하세요!” “잘 지내지? 몇 반이지? 시험지 꼭 제 시간에 풀어봐야 돼!”
24일 오전 8시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여자고등학교 교문. 몇 달 만에 만난 교사와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 대화를 나눈 시간은 5초 남짓에 불과했다.
두 사람이 주고 받은 것은 체크무늬 봉투에 든 전국연합학력평가(학평) 시험지와 응원의 마음을 담은 다과였다.
교사들은 손에 파란색 라텍스 장갑을, 얼굴에는 보건용(KF)마스크를 꼈다. 종종걸음으로 혼자서, 또는 친구와 함께 걸어오는 학생들도 마스크에 모자를 눌러쓴 채였다.
교문 앞 1차선 도로에서는 승용차가 하나 둘 들어왔다. 양복을 입은 교사는 ‘창문을 내려주세요’라 휘갈겨 쓴 종이를 붙인 팻말을 들고 있었다. 차량 속 학부모는 자녀의 학급을 말하고, 교사는 시험지를 건넸다. 차량이 잠시 세 대 정도 기다리기는 했지만 이내 빠져 나갔다.
모든 과정은 수 초만에 마무리됐다. 줄 서는 학생도 없었다. 인근 여의나루역 교차로는 차량이 가다 서다를 반복했지만, 학교 앞은 주택가 1차선 도로였음에도 대비될 정도로 소통이 원활했다.
오전 8시30분께 인근 공사장에서 차도를 막으려 하자 잠시 혼란이 있었지만, 학교 측에서 협조를 요청해 이내 정리됐다.
이날 오전 전국 고등학교 현장에서 학평 시험지가 학생들에게 배부됐지만 우려됐던 몰림 현상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교사들은 올해 첫 학평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에 무산될 것을 전제로 비상계획을 수립해 뒀던 덕분이라고 입을 모았다.
여의도여고 측은 학평 시험지를 문·이과로 나눠 배부를 준비했다. 문과반 140세트와 이과반 50세트로 총 190세트다. 이날 오전 8시10분부터 40분까지 30분간 문과 2세트, 이과 3세트가 남아 총 185명의 학생들에게 배부가 완료됐다.
절반 이상의 학생은 학부모 승용차를 타고 교문 앞으로 진입해 시험지를 받아가는 ‘드라이브 스루’ 형태로 시험지를 수령했다.
직접 걸어 등교하는 ‘워킹 스루’ 방식으로 시험지를 받아가는 학생들도 줄서기를 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학생들은 학교로부터 40분까지 와 달라는 공지를 받았지만 일찌감치 오는 경우도 보였다.
오전 8시께 학교 인근에서 만난 여의도여고 3학년 이다희 학생은 “늦어질까봐 먼저 왔다”고 말했다. 여의도여고 전용범(51·남) 3학년 부장 교사는 “혹시라도 줄을 설 경우 2m 간격을 벌리도록 하려 준비해 두었는데 다행이다”고 말했다.
한 해 첫 학평은 고등학생 전 학년이 치른다. 서울시교육청은 고1, 2의 경우 학교가 배부 시점을 자유롭게 정하도록 했지만, 여의도여고는 오후 2시에도 같은 방식으로 시험지를 나눠줄 계획이다.
모든 준비는 사흘 남짓만에 이뤄졌다. 이는 전적으로 학교와 현장 교사들의 몫이었다.
정부가 사회적거리두기를 5월5일까지 연장한다는 발표가 지난 19일, 교육당국의 학평 무산 결정이 20일이었고 학교 현장 공문 시행은 20일 오후였다.
고 1~3 전원에게 시험지를 나눠주라는 공문이 시행됐으나 논란이 일자 21일 고3만 배부하라는 안내가 다시 내려가기도 했다.
여의도여고는 23일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시험지를 받아 1시간동안 분배 작업을 교사들이 직접 했다. 드라이브스루와 워킹스루 동선과 계획도 학교에서 정했다. 시험지를 담은 한 장에 440원 어치 종이봉투 500매도 학교 예산으로 급히 사들였다. 전 부장은 “봉투를 지원할 수 있는지 교육청에 물었는데 그럴 수 없다고 해서 급하게 샀다”며 “먼저 알려줬으면 좋았을텐데 혼란스러웠다”고 말했다.
이 학교 고3 담임인 유수진(29·여) 교사는 “학생들이 많이 혼란해했다”며 “지난주부터 정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이 시험을 보는 게 맞느냐 물어오기도 했다”고 말했다.
한 고비를 넘긴 교사들의 걱정은 학평 이후의 진학지도에 쏠려 있는 분위기였다.
교사들은 짧은 시간 동안 응시시간을 엄수해서 시험을 볼 것을 강조했다. 수능을 대비하는 학생들에게는 학평과 모의고사를 보면서 수능 시험 시간에 적응하는 습관을 만드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번 학평은 공식적인 채점도 이뤄지지 않고 성적표도 없지만 학교에서는 진학상담에 활용할 방침이다.
유 교사는 “자기수준을 점검할 수 있는 도구로서 의미가 있다”며 “시험범위가 정해진 시험이기에 해당 단원에 대한 개념을 잘 숙지하는지 판단할 지표가 된다”고 말했다.
학교 측은 이날 학평 결과를 온라인 설문조사에서 자주 활용되는 ‘구글 폼’을 써서 학생들에게 오는 26일까지 제출받을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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