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첫 전국 단위 모의고사인 서울시교육청 주관 ‘전국연합학력평가’(3월 학평)가 4차례 연기된 끝에 궁여지책으로 ‘재택 시험’ 형태로 치러졌지만 무용지물이 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교사의 감독 아래 교실에 모여 치르고서 등급을 매기는 방식이 아닌 탓에 학생들이 인터넷 검색으로 문제의 답을 찾아 적거나 아예 정답지를 미리 구해 날림으로 시험을 치르는 일이 비일비재한 것으로 확인됐다.
3월 학평이 치러진 24일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실시간 검색어는 시험 관련 키워드로 도배되다시피 했다.
시험 시간표에 따라 국어 영역 시험이 치러진 오전 9시40분 이후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목록에는 ‘윤선도 견회요’ ‘설의적 표현’ ‘비언어적 표현’ ‘대구법’ 등 시험 관련 키워드가 줄을 이었다. 문제를 풀다 장벽에 막힌 학생들이 인터넷 검색이라는 편법을 쓴 것이다.
수학 영역 시험이 치러진 오전 11시20분 이후에는 ‘부채꼴 넓이 공식’ ‘sin30’ 등 수학 관련 키워드가 실시간 검색어 목록 상단을 차지했다. 부채꼴 넓이 공식은 낮 12시49분 기준으로 10대가 가장 많이 검색한 키워드 2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인터넷 수험생·학부모 커뮤니티 등에는 “3월 학평이 ‘오픈북 테스트’가 됐다”는 성토의 목소리가 줄을 이었다.
이에 더해 아직 정식으로 공개되지 않은 시험 답안지가 공개돼 학생들이 이를 서로 주고받거나 돈을 받고 판매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위터에는 이날 오전 9시쯤부터 모의고사 답안지를 공유하겠다거나 1000~2000원 정도를 받고 판매하겠다는 글이 줄지어 게재됐다.
‘모의고사 답안’이라는 키워드만 입력해도 “모의고사 고2 한국사 답안지 필요하신 분?”(먕***) “고1, 고3 2020 모의고사 답안지 있습니다. 메시지 주세요”(고3******) “현 고3인데 모의고사 답안지 주실 분?”(루루****) 등 글이 쏟아진다.
실제로 “고등학교 3학년용 3월 학평 답안지를 공유하겠다”는 글을 쓴 한 트위터 이용자에게 다이렉트 메시지로 요청했더니 약 5분만에 답안지 이미지 파일이 도착했다.
해당 이용자는 “어차피 공개될 답안지를 사고 파는 사람이 있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서 차라리 원하는 사람에게 나눠주기로 했다”고 말했다.
애초 서울시교육청은 3월 학평 시행 계획을 밝히면서 문제지는 시험 당일 학생들에게 배부하거나 내려받게 하고, 답안지는 시험이 모두 끝난 당일 오후 6시 이후 한국교육방송공사(EBS) 홈페이지 등을 통해 공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시험 당일 ‘드라이브 스루’나 ‘워킹 스루’ 등 방식으로 문제지를 현장에서 배부하는 것이 어렵다고 판단한 일부 학교가 문제지와 정답지를 전날 온라인으로 미리 배포하면서 답안지 유출을 막지 못했다.
입시를 코앞에 둔 수험생들은 당황스럽다는 반응이다. 서울 용산구의 한 고등학교에 다니는 고등학교 3학년 A군(18)은 “이번 시험에서 전국 평균 점수를 내면 수학도 80점은 나오겠다”며 “스스로 잘하면 되는 거라고 위로하고 있지만, 집중해서 시험을 볼 이유를 못 찾겠다”고 토로했다.
이날 오전 학교에서 직접 문제지를 수령했다는 서울 영등포구의 한 수험생 B군(18)은 “이럴 거면 왜 굳이 학교에서 시험지를 받아가게 했는지 모르겠다”며 “학교에서는 가채점 성적을 바탕으로 진학 지도를 해주겠다는데 점수를 정직하게 적어서 낼 학생이 몇이나 될 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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