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 소속 여성 공무원을 성추행한 의혹으로 전격 사퇴한 오거돈 전 부산시장에 대한 논란이 쉽사리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오 전 시장은 23일 오전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한 사람에게 5분 정도 짧은 면담과정에서 불필요한 신체접촉을 했고, 이것이 강제추행으로 인정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며 부산시장직을 사퇴하겠다고 밝혔다.
경찰은 부산성폭력상담소 측의 협조를 받아 사실관계를 파악중이다. 경찰은 특히 오 전 시장에게 형법상 강제추행 또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을 적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법리적 검토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더불어민주당 윤리심판원은 24일 오 전 시장의 비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작하겠다면서 급히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이번 사건으로 안희정 전 충남지사, 민병두 의원 등 민주당 출신 인사들의 성추문 사건이 다시 언급되면서 난색을 표하고 있다.
◇강제추행,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인정될까
형법 제298조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에 대하여 추행을 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3년이하의 징역을 정한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보다 법정형이 높기 때문에 강제추행이 인정된다면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만 인정될 때보다 훨씬 무겁게 처벌된다.
현재 피해자는 명백히 강제추행이 있었다는 입장이다. 피해자 측에 따르면 피해자는 이달초 업무시간에 오 전 시장 수행비서의 호출을 받고 오 시장의 집무실에 갔다가 성추행을 당했다. 피해자는 23일 입장을 내고 “그곳에서 발생한 일에 경중을 따질 수 없다”며 “그것은 명백한 성추행이었고, 법적 처벌을 받는 성범죄였다”고 주장했다.
당시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신체접촉이 있었다면 강제추행죄가 성립될 가능성이 높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대법원은 힘의 대소강약을 불문하고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는 유형력의 행사가 있다면 강제추행죄에서 폭행으로 인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성범죄 관련 친고죄 조항은 모두 폐지된 상태이므로 피해자의 직접 고소가 없어도 오 전 시장에 대한 수사와 처벌이 가능하다.
서민민생대책위원회가 24일 오 시장을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과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서울남부지검에 고발하면서 오 전시장이 수사를 피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도 적용될 가능성이 있다.
성폭력처벌법 제10조는 ‘업무, 고용이나 그 밖의 관계로 인하여 자기의 보호, 감독을 받는 사람에 대하여 위계 또는 위력으로 추행한 사람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권의 차기 대권주자로 꼽혔던 안 전 지사는 비서 성폭행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법원은 피해자의 진술이 일관되고 구체적이라며 신빙성을 인정하고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과 추행 부분을 유죄로 인정했다.
오 전 시장에게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이 인정되려면 오 전 시장과 피해자 사이에 업무로 인한 보호, 감독 관계가 있었음이 인정돼야 한다. 안 전 지사의 재판에서 치열하게 다투어졌던 것도 바로 이 부분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오 전 시장의 경우에는 업무상 위력 관계에 대한 입증은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봤다.
승재현 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사회생활에서 계속적·반복적으로 하는 행동이라면 업무범위에 들어가는 것”이라며 “피해자가 부산시에서 일정시간 반복적이고 계속적인 업무를 해왔다면 부산시장과는 업무상 상하관계가 존재하게 되므로 당연히 (업무상 위력관계가) 성립된다”고 말했다.
◇사퇴회견서 범행 명확히 인정 안해… 변수로 남아
수사진행 과정에서 오 전 시장이 앞으로 어떠한 태도를 보일 것인가도 변수로 남아있다.
오 전 시장은 사퇴 기자회견에서 “한 사람과 5분 정도의 짧은 면담 과정에서 불필요한 신체접촉을 했다. 이것이 해서는 안 될 강제추행으로 인정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경중에 관계없이 어떤 말로도 어떤 행동으로도 용서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일견 성추행을 인정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범죄구성 요건에 해당하는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확정짓는 단어는 없다.
성범죄의 경우 가해자의 진술은 가장 중요한 근거가 된다. 오 전 시장은 이날 ‘불필요한 신체접촉’을 했다면서 ‘강제추행으로 인정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며 한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이며 향후 분쟁에 대비한 것으로 해석될 여지를 남겼다.
피해자 역시 오 전 시장에 발언에 대해 “‘강제 추행으로 인정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경중에 관계없이’ 표현으로 되레 제가 ‘유난스러운 사람’으로 비칠까 두렵다”며 유감을 표명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오 전 시장은 여러 차례 성추행을 근절해야 한다는 공식발언을 한 적이 있는데, 사퇴 기자회견에서 발언은 그런 사람이 말했다고는 이해하기 쉽지 않은 진술이었다”며 “강제추행인지 몰랐다는 발언 자체가 오 전 시장과 양립할 수 없는 진술이라고 생각한다”라고 지적했다.
경찰은 유튜브채널 가로세로연구소가 지난해 10월 오 전 시장이 다른 공무원을 성추행했다며 폭로한 건도 내사 중이다. 해당 채널은 2018년 지방선거 당시 오 시장이 5억원 규모의 불법 선거자금에 연루됐고 시청 직원을 상대로 성추행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경찰은 내사가 마무리되면 피해자 등의 고소고발 여부에 상관없이 수사로 전환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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