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피플 in 뉴스]‘양날의 칼’ 한국식 코로나 대처법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4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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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신규 확진자 수가 며칠째 10명 내외로 줄었습니다. 매일 확진자가 쏟아지던 지난달과 비교할 때 놀라운 변화입니다.

한국식 코로나19 대처법은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입국 금지, 지역 봉쇄, 영업 중지 같은 초강력 조치 대신 일상생활을 유지하면서 감염 확산을 막았기 때문입니다. 정부의 영업 중지나 이동 제한 조치에 항의하는 외국 국민들의 시위는 우리에게 낯선 장면입니다.

이런 가운데 한국의 코로나19 대응 사례를 분석한 논문이 26일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의학학술지 ‘신종 감염병’ 온라인판에 실렸습니다. 지난달 8일 서울 구로구의 한 콜센터에서 확진자가 나오면서 비상이 걸렸던 상황을 어떻게 해결했는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논문에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사진)이 교신저자로 참여했습니다.

논문에 따르면 확진자가 나온 다음 날 질병관리본부와 서울시, 경기도, 인천시가 참여한 합동대응팀이 꾸려졌습니다. 방역 당국은 건물을 즉각 봉쇄하고 역학조사를 실시했습니다. 불과 4일 만에 사무실 근무 직원, 거주자 등 1143명의 동선을 추적해 검체를 채취했습니다.

방역 당국이 지난달 13일부터 16일까지 이 건물 주변에 5분 이상 머문 사람에게 보낸 문자메시지가 1만6628건입니다. 정보기술(IT) 강국의 장점을 충분히 활용했습니다. 문자를 받은 사람은 다른 사람과의 접촉을 피하고 가까운 검사소에서 진단검사를 받도록 했습니다. 확진자가 97명 나왔지만 지역사회 대규모 전파를 막을 수 있었습니다.

일각에서는 코로나19 차단을 위한 사생활 침해가 지나친 것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행정기관이 개인정보를 조사해 공개하는 법적 근거는 무엇일까요.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감염병예방법)’ 제76조 제2항에 따르면 보건복지부 장관이 감염병 예방 및 차단을 위해 경찰에 환자 등의 휴대전화 위치정보를 요청할 경우 경찰은 통신사업자 등에게서 정보를 받아 전달해야 합니다. 복지부 장관은 같은 법 제76조 제1항에 따라 환자의 교통·신용카드 사용 명세, 폐쇄회로(CC)TV 화면 등 영상정보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카드 사용 명세와 CCTV는 질병관리본부장도 확인이 가능합니다. 2015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이후 이런 장치들이 마련됐습니다.

우리가 겪어보지 못한 시스템도 많습니다. 정부가 개인의 정보를 모아 10분 만에 동선을 파악할 수 있는 이른바 역학조사 지원 시스템이 대표적입니다. 자가 격리 이탈자에 대해 안심밴드 같은 통제 장치를 채우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언급된 ‘빅 브러더’와 제러미 벤담의 ‘판옵티콘’(중앙에 높은 감시탑이 있는 원형 감옥)이 현실로 다가온 듯합니다. 프랑스, 독일 등 유럽 국가에서는 개인의 사생활 침해와 공익을 둘러싼 논쟁이 가열되고 있습니다.

감염병 예방을 위해 도입한 이런 제도는 양날의 칼입니다. 바로 사용하면 공익에 득이 되지만 잘못 사용하면 빅 브러더가 될 수 있습니다.

‘포스트 코로나19’ 시대에는 국가권력과 시민사회의 새로운 긴장이 예상됩니다.

박인호 용인한국외대부고 교사
#코로나19#한국식 대처법#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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