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학조사관 6인의 100일… 확진자 진술-기록 퍼즐맞추듯 추적
방역당국 동선공개, 이들 있어 가능… 현장대응 ‘컨트롤타워’ 역할도
“나도 감염되는 악몽 시달리지만 의료진-시민 힘합쳐 잘 막았다”
소방관도… 아이도… #의료진덕분에 27일 문재인 대통령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환자 치료에 전념한 의료진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덕분에 챌린지’에 참여하면서 시민들 사이에서도 챌린지 열풍이 불고 있다. 국내 첫 확진자가 발생한 지 100일째인 28일 서울 종로소방서 소방관도, 청계천에서 만난 모자도, 중구 소속 청소노동자도, 명동 거리에서 만난 여성도 챌린지에 동참했다. 엄지를 치켜든 오른손을 왼손으로 받치는 이 동작은 수어로 ‘존경’과 ‘자부심’을 뜻한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16일부터 ‘덕분에 챌린지’ 캠페인을 시작했다. 뉴시스
장준호 씨(33)의 전화는 100일 내내 ‘쉼 없이’ 울렸다. 많을 땐 하루 200통도 넘게 왔다. 밥을 먹다가도, 잠을 자다가도 전화를 받았다. 그는 “심지어 목욕을 하다가도 전화가 울리면 받았다”고 했다.
그는 경북 지역 역학조사관이다. 경북 지역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나 의심 환자가 발생할 때마다 그의 전화는 어김없이 울렸다.
28일은 국내에서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나온 지 100일이 되는 날이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의료진과 공무원은 물론 환자와 가족, 일반 시민까지 모두가 코로나19에 맞서 싸웠다. 그중에는 이젠 낯설지 않은 ‘역학조사’를 담당한 조사관들도 있다.
역학조사란 감염병의 발생 원인과 특성 등을 밝히는 일이다. 이를 토대로 적절한 방역 대책을 세우는 데 목적이 있다. 동아일보가 만난 역학조사관 6명은 스스로를 “감염병 형사”라 불렀다. 범인을 찾고 잡아내듯 감염 경로와 원인을 추적한다. 방역 당국이 확진자의 동선을 공개할 수 있는 것도 이들이 현장에서 뛰기 때문이다.
동선은 확진자의 진술을 바탕으로 추적하는데, 결코 쉽지 않다. 경기 남양주시의 김동규 조사관(28)은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는 고령 확진자의 경우, 보호자와 목격자의 진술을 들어가며 퍼즐을 맞추듯 동선을 파악한다”고 했다. 폐쇄회로(CC)TV와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카드 내역 등 온갖 정보를 뒤지기도 한다.
확진 판정을 받은 시민 중에는 “내가 감염되고 싶어서 걸렸느냐”며 화풀이를 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인천의 장한아람 조사관(33·사진)은 “자영업자인 한 확진자의 남편이 밤늦게 술에 취해 전화를 했었다. ‘상호까지 공개하면 이제 장사는 어쩌란 말이냐’며 울부짖는 모습이 안타까웠다”고 했다. 이들을 다독이고 설득해 진술을 이끌어내는 것도 조사관들의 몫이다.
확진자 동선 파악은 역학조사관 업무 가운데 일부일 뿐이다. 조사관들은 지역에서 코로나19 상황을 총괄하는 ‘컨트롤타워’가 돼 방역 동선을 설정하고 퇴원 환자와 사망 환자 등을 관리한다. 질병관리본부의 지침을 바탕으로 현장에서 발생하는 개별 상황에 대해 직접 판단도 내린다.
지난달 경북 포항시에서 있었던 임신부 출산도 그랬다. 자가 격리에 들어간 임신부가 어떻게 산부인과 병원에서 안전하게 출산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대처하는 것도 역학조사관이 하는 일이다. 다행히 임신부는 건강한 아이를 낳았다. 15일 국회의원 총선거 때 생활치료시설 내부에 투표소를 어디에 설치해야 할지도 역학조사관들이 결정했다.
대구의 김명재 조사관(27)은 “책상 위에 확진자들에 대한 역학조사 보고서가 매일 수백 장씩 쌓이는 것 자체가 ‘공포’였다”며 “나도, 심지어 가족까지 코로나19에 감염되는 악몽을 꾸기도 했다”고 전했다. 경기도 역학조사관 A 씨(29)는 “확진자가 수시로 발생해 주말과 공휴일에도 마음 편히 쉴 수 없었다”고 했다.
역학조사관들에게 지나간 100일은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아직 끝이 보이지 않는 코로나19 상황에 심신이 지치지 않았을까. 한데 그들은 자신보다 지자체 공무원, 보건소 직원, 병원 의료진 등 다른 이들부터 걱정하고 칭찬했다.
“돌아보면 모두가 힘을 합쳐 참 잘 막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누구 한 명이 잘해서 한 일은 절대 아닐 겁니다.”(경북 임민아 조사관·39)
“힘들었을 텐데 자가 격리 수칙을 잘 지켜주신 시민들, 서로 양보하며 사회적 거리 두기 운동에 동참한 시민들께 감사드려야죠.”(김명재 조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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