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 혐의’ 구속됐다가 결국 무혐의…대법 “국가 배상하라”

  • 뉴시스
  • 입력 2020년 4월 29일 11시 31분


"경찰이 유도 질문해"…국가 상대 소송 내
대법 "의무 위반해 조서 작성…배상해야"

성폭행 혐의로 구속됐다가 무혐의 처분을 받은 당시 소년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대법원이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일부 인정했다.

대법원 2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A씨 등 4명과 그의 가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A씨 등 4명에게 300만원을 배상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29일 확정했다.

A씨 등 4명은 중학교 선후배 사이로, 지난 2010년 10월 지적 장애를 앓고 있던 여성을 성폭행했다는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아 구속됐다. 당시 A씨 등은 만 14~17세의 청소년이었다.

경찰은 A씨 등을 구속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지만, 검찰은 공범 및 피해자의 진술이 계속해서 바뀌는 점 등을 고려해 이들을 석방했다.

이후 검찰은 “일부 자백 취지 진술 및 피해자 진술만으로는 피의 사실을 인정하기 부족하고,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A씨 등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그러자 A씨 등은 “경찰이 유도 질문을 했고, 단답형 답변을 받았음에도 질문과 답변을 바꾸는 등 증거를 조작했다”며 이에 따른 손해를 배상하라며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1심은 A씨 등의 주장을 대거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경찰 수사 과정에서의 조서 작성에 대한 과실은 있었다고 판단했다. 단답형으로 한 대답이 대다수임에도 문답 내용을 바꿔 적어 자발적으로 구체적인 진술이 나온 것처럼 조서가 작성된 점을 지적한 것이다.

1심은 이에 따라 A씨 등에 대해 국가가 300만원을 각각 배상하라고 판결했고, 2심에서도 판단이 유지됐다.

대법원은 “수사기관은 수사 등 직무를 수행할 때 헌법과 법률에 따라 국민의 인권을 존중하고, 공정하게 해야 하며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법규상·조리상 의무가 있다”며 “특히 피의자가 소년 등 사회적 약자인 경우에는 수사 과정에서 방어권 행사에 불이익이 발생하지 않도록 더욱 세심하게 배려할 직무상 의무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경찰은 피의자 진술을 조서화하는 과정에서 객관성을 유지해야 한다”며 “고의 또는 과실로 직무상 의무를 위반해 피의자신문 조서를 작성함으로써 피의자의 방어권이 실질적으로 침해됐다고 인정된다면 국가는 그로 인한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다만 대법원도 “구속 이전의 수사 결과 및 증거 등에 비춰보면 수사기관이 A씨 등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해서 일정 기간 수사한 것이 합리성을 결여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법원 관계자는 “수사기관의 피의자신문 조서 작성에 있어 직무상 의무 위반과 관련해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사실상 최초의 선례”라고 설명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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