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화재와 닮은꼴…“유증기 유독가스 한모금만 마셔도 정신 잃어”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4월 29일 21시 39분


29일 오후 경기도 이천시 모가면 물류창고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화재로 건물이 검게 그을려 있다. 이 사고로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소방당국은 원인과 피해 규모를 조사할 방침이다. 2020.4.29 © News1
29일 오후 경기도 이천시 모가면 물류창고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화재로 건물이 검게 그을려 있다. 이 사고로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소방당국은 원인과 피해 규모를 조사할 방침이다. 2020.4.29 © News1
29일 오후 8시35분 현재 38명이 숨진 경기 이천시 한익스프레스 물류센터 신축공사장의 대형 참사 원인으로는 △유독가스 발생 △안전장치 미흡 △스프링쿨러 미설치 등이 꼽힌다.

유증기가 폭발하면서 화재가 발생했다는 점에서 이번 화재는 2008년 40명이 숨진 이천 냉동창고 화재 사건과 유사하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물류센터 화재는 직원들이 건물 지하 2층에서 우레탄폼 작업 등을 하던 중 유증기가 폭발하면서 발생했다. 자동차에 휘발유를 넣을 때 생기는 아지랑이 같은 기체인 유증기는 기름이 섞인 공기로 조그만 불꽃에도 쉽게 폭발한다. 우레탄폼 작업을 할 때는 반드시 유증기가 사라진 뒤에 용접작업을 해야 한다.

하지만 유증가가 남아 있는 상태에서 당시 지하 2층에서 용접 작업을 하던 중 생긴 불꽃이 유증기에 옮겨 붙은 것으로 추정된다. 현장 직원 A 씨는 “우레탄폼을 발포한 공간 옆에서 용접 작업을 하다가 불똥이 튄 것 같다”고 전했다. 우레탄폼은 불에 잘 타는 데다 불이 붙으면 각종 유독가스를 내뿜은 것도 인명피해를 키웠다. 서승현 경기 이천소방서장은 “유증기로 인한 유독가스는 한 모금만 마셔도 정신을 잃는다. 지하에서 대피를 하지 못한 희생자들은 우레탄이 내뿜는 유독가스 때문에 대피하기가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하 2층에서 발생한 유독가스는 샌드위치 패널 등으로 옮겨 붙으면서 빠르게 4층 건물 전체로 퍼졌다. 이로 인해 유독가스가 지상 3,4층으로 번지면서 건물 곳곳에서 작업을 하던 직원들이 미처 빠져나오지 못하고 희생됐다. 이 사고로 숨진 희생자의 가족 김모 씨는 “3층에서 우레탄폼 작업을 하던 처남이 숨졌다. 3층에서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우레탄 작업을 할 때는 최대한 열린 공간에서 작업을 하고 부득이하게 밀폐된 공간에서 작업을 할 때는 냉각장치와 환기장치를 잘 갖춰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당시 불이 처음 발생한 공간은 지하 2층이었다. 김규용 충남대 건축공학과 교수는 “화재가 발생한 공간이 지하라 환기 시설이 잘 갖춰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아 피해자가 많이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밀폐된 공간에서 우레탄 작업을 할 때는 현장 책임자가 화재를 일으킬 수 있는 장비 등을 철저히 통제해야 한다”고 했다.

화재가 발생한 장소가 공사현장이었기 때문에 스프링클러가 미처 설치되지 않았던 점도 화재 피해를 키운 원인으로 지적된다. 소방 관계자는 “당시 공사현장 건물에는 소화기와 유도등만 설치돼 있었다”고 했다.

김소영 기자 ks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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