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찾아간 경기 포천의 한 재활용품 회수 선별 업체. 야외에 늘어선 천막형 창고마다 각종 비닐과 플라스틱 더미가 터질 듯이 삐져나와 있었다.
이 업체는 서울 8개 구와 경기 6개 시에서 재활용품을 수거한 뒤 재질별로 분류해 각각 재생원료 공장으로 보낸다. 박성준 대표는 “평소에는 창고에 300∼400t 보관되는데 요즘은 거의 700t이 쌓여 있다”고 말했다. 이곳의 최대 보관량인 800t을 넘길까 봐 조바심을 내는 상황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글로벌 경기 침체 여파가 재활용품 시장까지 흔들고 있다. 조만간 아파트와 같은 공동주택에서는 재활용품 수거 대란이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 수출·내수 동반 침체에 갈 곳 없는 재활용품
산업 전반에서 수출과 내수가 모두 악화되면서 재활용품을 재가공한 재생원료 수요가 급감하고 있다. 재활용품 자체를 수출할 길도 막혔다. 플라스틱 재생원료의 경우 유가 하락의 타격까지 겹쳤다. 재생원료 생산가보다 원유로 새 제품을 만드는 것이 저렴한 상황이다. 재활용품 가격이 추락할 수밖에 없다. 지난해 말 폐지 값이 낮아진 데 이어 최근 플라스틱 가격도 떨어졌다. 압축 PET 가격은 2월 kg당 289원에서 4월 256원으로 하락했다.
재활용품 가격 하락은 곧 수거업체의 위기다. 지방자치단체가 일괄 수거하는 단독주택과 달리 아파트 등 공동주택에서 나오는 재활용품은 대부분 수거업체가 돈을 내고 가져간다. 아파트 주민은 부수입을 얻고, 수거업체는 재활용품을 되팔아 이득을 남기는 구조였다. 그러나 이제는 수거업체 입장에서 돈을 내고 돈 안 되는 재활용품을 가져갈 이유가 없는 국면이다.
여기에 수거업체를 흔드는 복병이 또 있다. 바로 헌옷 수거함 등에 넣는 의류다. 주로 중앙아시아나 동남아시아로 향하던 헌옷 수출은 코로나19 여파로 확 줄었다. kg당 400∼450원 선의 안정적인 수입원이었던 의류 판매마저 막힌 것이다.
수거업체들은 “수거 대란이 언제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경기 지역 한 수거업체 대표는 “헌옷을 넘기던 무역회사 10곳 중 8곳이 문을 닫았다”며 “이대로라면 아파트에 ‘당분간 재활용품 배출을 줄이거나 지하창고 등에 보관해 달라’고 요청해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공동주택 재활용가능자원 수집·운반협회의 홍도찬 사무총장은 “이미 폐지값 하락으로 의류 의존도가 높아진 상황이라 타격이 더 크다”고 설명했다.
○ 재활용품 공공비축-공공수거 착수
재활용품이 쌓여가자 정부는 이달부터 재활용품 공공비축에 착수한다. 재활용품 시장의 숨통을 잠시라도 틔우기 위해서다. 조만간 페트 플레이크(페트병을 잘게 부순 재생원료)부터 우선 수매할 방침이다.
정부는 또 각 지방자치단체에 재생원료 가격 하락에 맞춰 수거업체와 공동주택의 재활용품 매각 수거 대금을 조정하도록 권고했다. 환경부는 “수거 거부 상황이 발생할 경우 해당 지자체가 공공수거를 하는 방향으로 대책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위기 상황에 맞는 지자체의 역할을 강조한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생활폐기물 처리에 책임이 있는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관내 아파트 배출·수거 상황을 모니터하고 맞춤형 가격 조정을 해야 한다”며 “나아가 지자체가 운영하는 공공선별장 역시 재활용품 가격 변동에 맞춰 탄력적으로 운용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배재근 서울과학기술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장기적으로 볼 때 재활용품의 안정적인 처리를 위해 배출 관리 및 처리 전 분야의 공공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