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번질 길목 미리 차단… 고성 산불 최악 피했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5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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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산불보다 피해 적었던 이유… 강풍-건조땐 소방차 전진 배치
인근 저수지 물 이용한 공중전 성과… 주민들도 대피 않고 진화 도와
작년 산불보다 한달 가까이 늦어… 물기 머금은 수풀에 확산 속도 더뎌

“그나마 피해가 비교적 작아 천만다행입니다. 하지만 해마다 이맘때면 불안하기 짝이 없습니다.”(주민 정춘자 씨)

2일 오전 강원 고성군 토성면 도원1리. 전날 이 마을에서 발생한 불은 산불로 번졌다가 발화 약 12시간 만인 오전 8시경 다행히 주불이 잡혔다. 하지만 마을은 여전히 매캐한 냄새가 온 사방을 뒤덮고 있었다. 현장 소방인력들은 잔불 정리와 함께 처음 화재가 발생한 주택의 현장 감식에 집중하고 있었다.

고성군 주민들은 지난해 4월에 이어 또다시 화마를 겪었다. 불길을 잡았단 소식에 한시름 놓으면서도 얼굴엔 수심이 가득했다. 지난해 산불로 집을 잃었다는 주민 이기흥 씨(63)는 “인명 피해도 없이 비교적 빨리 진화돼 안도했다. 하지만 잦은 산불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고 했다.

○ 수풀의 물기가 확산 제어…대응체계도 향상


화재가 발생한 도원1리도 비교적 피해가 적은 편이었다. 처음 불이 시작된 주택 외에 그나마 다른 가옥들은 멀쩡했다. 화재 발생 주택 인근에서 만난 정용섭 씨(56)는 “화재 소식을 듣고 급하게 부모님을 모시고 속초로 피신했다. 다들 애써 주신 덕에 지난해보단 사정이 낫다”며 고마워했다.

민가를 덮치며 강원지역 곳곳으로 번진 지난해와 달리, 올해 산불은 대부분 산림만 태우고 그쳤다. 일단 불길 주변에 민가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해에는 민가는 물론 대형 콘도 등 숙박시설이 밀집된 지역으로 불이 번지며 피해가 커졌다.

화재 발생 시점도 불행 중 다행이었다. 소방당국은 물기를 머금은 수풀이 많이 자라 불의 확산 속도를 더디게 만든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박재성 숭실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도 “지난해 화재는 4월 초라 수풀이 적고 산이 전체적으로 메말라 있었다. 지금은 나무나 풀들이 수분을 많이 머금어 도움이 됐다”고 분석했다.

첫 발화 지점에서 500m가량 떨어진 지점에 도원저수지가 있었던 점도 빠른 진화를 도왔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산불 진화에 참여한 김병령 고성소방서 거진센터장은 “지난해와 불이 난 면적도 차이가 있지만, 바로 옆에 큰 저수지가 있어 헬기로 빠르게 살수를 할 수 있었던 게 크다”고 설명했다.

소방당국의 대응 방식도 차이를 만들었다. 소방당국은 심야에 불이 번질 것으로 예상되는 길목을 중심으로 바리케이드를 치고 예비 살수를 했다. 동이 트자 헬기를 집중 투입해 공중전을 펼쳤다. 지난해 산불 이후 강풍경보나 건조경보 등이 발령되면 인근 지역 소방차를 위험지역에 전진 배치해뒀다. 박 교수는 “지난해 경험을 바탕으로 대응 협력 체계가 업그레이드됐다”며 “지방자치단체나 산림청, 소방청 등이 서로 적극적으로 협력하며 맡은 역할을 잘해낸 결과”라고 평가했다.

○ 주민과 군(軍)도 합심 협력

이번 진화 과정에선 인근 군부대와 지역주민들의 활약도 두드러졌다. 1일 오후 화재가 한창 번지는 상황에서 도원1리 주민 상당수는 대피하지 않고 소방대원들을 도왔다고 한다. 정해육 도원1리 이장(63)은 “현지 지리에 익숙하지 않은 소방대원들을 주민들이 나서서 도와 길을 안내하고 잔불을 정리했다”고 했다. 최초로 화재를 신고했던 정 이장은 주변 마을 이장들과 인근 군부대 등에도 곧바로 연락을 취했다.

22사단도 산불이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소방당국을 도와 최선을 다했다. 화재 발생 당일 불길이 탄약고와 유류고 주변 약 100m까지 접근했으나, 밤새 물을 뿌려가며 현장을 지켰다고 한다. 안재형 22사단 전차대대장은 “불길 주변에 탄약고 등이 있어 자칫하면 큰 피해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화재 확산을 반드시 막겠다는 일념으로 소방당국 지역주민과 함께 밤새 노력했다”고 말했다.

고성=강승현 byhuman@donga.com·박종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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