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피플 in 뉴스]‘5·18 법정’에 다시 선 전두환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5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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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중 유럽 각지의 유대인을 체포해 집단 학살을 주도했던 인물이 있습니다. 독일의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1906∼1962)입니다. 그는 유대인 학살을 총지휘했던 홀로코스트(holocaust)의 장본인입니다. 법정에서 그는 “저는 죄가 없습니다. 명령에 끝까지 따랐을 뿐입니다”라며 끝까지 무죄를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역사적 재판은 아이히만에게 사형을 선고합니다.

일본 역시 침략 전쟁의 당사국입니다. 동아시아에서 수많은 양민을 희생시켰습니다. 그러나 일본의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일제강점기 위안부로 끌려가 고통받은 분들, 강제노역 피해자에게 진심 어린 사죄는커녕 오히려 역사를 왜곡하는 후안무치의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계절의 여왕답게 5월은 아름답습니다. 동시에 슬픔이 배어 있는 달이기도 합니다. 5·18민주화운동이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5·18은 신군부 세력의 권력 찬탈 야욕이 빚어낸 역사적 비극입니다. 신군부 세력을 이끈 전두환 씨(89·사진)의 반성 없는 태도에 희생자 유가족이 느끼는 상처는 더욱 깊습니다. 29만 원밖에 없다면서 추징금을 피하더니 지인들과 종종 골프를 치러 다니는 모습에 허탈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는 회고록을 써서 반성보다는 자신의 행위를 합리화했습니다.

전 씨는 지난달 27일 광주의 법정에 나타났습니다. 5·18 희생자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된 사건의 재판에 출석한 겁니다. 그는 2017년 4월 펴낸 자신의 회고록에서 고(故) 조비오 신부의 헬기 사격 목격 증언이 거짓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또 조 신부를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한 혐의도 받고 있습니다.

전 씨는 이날 “5·18 당시 헬기 사격과 관련해 조비오 신부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검찰 측 공소 사실을 전면 부인했습니다. 그는 “내가 알고 있기로는 당시에 헬기에서 사격한 사실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만약 헬기에서 사격했다면 많은 사람이 희생됐을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80년 5월 광주에서 헬기 사격이 있었다. 피고인은 이 같은 사실을 알고 있었거나 알 수 있는 지위에 있었다”는 검사 측 물음에 대한 항변이었습니다.

광주지법 앞에는 그의 반성의 말 한마디를 듣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도열했습니다. 이날 “수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왜 책임지지 않는가”, “이렇게나 많은 죄를 짓고도 왜 반성하지 않는가”라고 묻는 취재진을 외면한 채 그는 끝내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5·18 관련 단체들은 이날 5·18 희생자에게 사죄를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습니다. 이들은 전 씨가 광주지법에 도착하자 “전두환은 역사와 국민 앞에 무릎 꿇고 사죄하라”, “전두환의 전 재산을 환수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습니다. 시민들은 또 지난해 서울 광화문광장에 설치했던 ‘전두환 치욕 동상’을 이날 광주지법 앞에 설치했으며 플라스틱 망치로 이를 내리치며 분노를 표출하기도 했습니다.

희생자 유가족의 한과 시민들의 분노는 가해자의 진심 어린 참회를 통해 다소나마 달래질 수 있습니다. 반성과 참회가 그리도 어려운 걸까요.

박인호 용인한국외대부고 교사
#5·18민주화운동#전두환#신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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