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꼭 남아 소외된 사람들 돕고 싶어요”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5월 7일 03시 00분


부모가 불법체류 ‘그림자 아이들’
고교 졸업후 추방위기 5000명 달해
인권위, 법무부에 “강제퇴거 중단… 체류자격 심사 제도 마련” 첫 권고

“꼭 사회복지사가 되어 소외된 사람들을 돕고 싶어요.”

언뜻 10대의 평범한 장래희망처럼 들리는 이 말. 하지만 6일 오후 만난 A 양(18)은 유독 눈을 빛내며 또박또박 가슴에 품은 소원을 입에 담았다. 이제는 나고 자란 한국 땅을 떠나지 않아도 될 희망이 생겼기 때문이다. A 양은 국적이 없는 장기체류 미등록 이주아동. 이른바 ‘그림자아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달 29일 법무부에 ‘A 양에 대한 강제퇴거를 중단하라’고 권고했다”고 6일 밝혔다. A 양이 국내에 머무르길 바란다면 직접 체류자격을 신청할 수 있게 하고 관련 제도를 마련하라는 내용이다. 인권위가 법무부에 그림자아이들의 강제퇴거 중단을 권고한 건 처음이다.

“그간 사회복지사는 이룰 수 없는 꿈이었어요. 부모님이 불법체류자라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이 나라를 떠나야 했죠. 전 한국 말곤 살아본 적도 없고 한국말밖에 못해요. 다른 나라에 산다는 건 꿈에도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A 양은 현재 다니는 고등학교에서 봉사동아리 부장도 맡고 있다. 지역 요양원 등에서 지금까지 200시간 넘게 봉사활동을 했다. A 양은 “집안 사정이 어려워 초등학생 때부터 여러 기관의 도움을 받았다. 언젠가는 이 은혜를 갚겠다고 오랫동안 꿈꿔왔다”고 했다.

이날 A 양과 함께 19세 B 양도 강제퇴거 중단 권고 대상에 포함됐다. 두 사람은 외모도 말투도 영락없는 한국 10대였다. 실제로 B 양이 그림자아이란 건 친한 친구 몇 명만 안다고 한다. 그는 “지금껏 한 번도 한국인이 아니라고 생각한 적 없다. 자부심을 갖고 살아왔는데 이제 와 한국 국적이 없다고 내쳐지면 내 존재가 지워지는 기분이 든다”고 했다.

올해 2월 고교를 졸업한 B 양도 A 양만큼 열심히 살아왔다. 교내 연극동아리에서 활동하며 음향엔지니어의 꿈을 키워왔다. 대학에 진학하고 관련 공부도 해 멋진 음향감독이 되려 한다. B 양은 “이번 조치로 꿈을 이어갈 희망이 생겨 가슴이 벅차다”고 했다.

한국에서 나고 자라 당연히 자신을 한국인이라 생각하는 그림자아이들. 하지만 이들은 성인이 되면 아무 연고도 없는 부모 나라로 쫓겨날 위기에 처한다. 2017년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현재 국내에 그림자아이는 5000명이 넘는다. 당시 보도 이후 법무부는 일부 강제퇴거 명령을 철회했지만, 여전히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인권위는 “법무부가 피해자들의 강제퇴거 명령을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공익보다 오로지 한국에서만 자라온 피해자들이 입게 되는 개인적 불이익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법무부는 “민감한 문제인 만큼 권고를 토대로 기초부터 충실하고 신중하게 검토해 결과를 회신하겠다”고 밝혔다.
 
박종민 기자 blick@donga.com
#불법체류자#그림자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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