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 이야기]북한의 기상청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5월 9일 03시 00분


차상민 케이웨더 공기지능센터장
차상민 케이웨더 공기지능센터장
북한의 기상청에 해당하는 기상수문국은 그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강수 관리를 위한 기관으로 만들어졌다. 이 기관은 1946년 농림국 산하로 발족해 1961년 국토환경성에 소속되었다가 1995년 독립부처로 승격됐다. 북한은 농업 관개시설이 열악하고 전력 생산의 40%를 수력발전에 의존하기 때문에 기상수문국의 업무는 강수 관리에 치중됐다. 주민을 위한 날씨 예보 서비스가 후순위로 밀리면서 예보 능력은 뒤처질 수밖에 없었다.

북한은 휴전선 남쪽에서 보내는 대북 확성기 방송에 대해 극도의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는데 그 이유 중에는 의외로 날씨 예보도 있다. 북한은 방송 내용이 거짓선동을 위한 가짜뉴스라며 군인과 주민들을 교육했다. 하지만 남한에서 들리는 날씨 예보가 기상수문국의 예보보다 더 믿을 만한 것이었기에 날씨 방송에 대한 신뢰는 자연스럽게 다른 내용에 대한 신뢰로 옮겨가게 되었던 것이다. 확성기 방송으로 “인민군 여러분, 오늘 오후에 비가 오니 빨래 걷으세요”라고 하면 북한군 부대에서 실제로 빨래를 걷었다고도 한다.

김정은은 2014년 6월, 집권 후 처음으로 기상수문국을 방문하여 “기상사업이 현대화, 과학화되지 못한 결과 오보가 많다”고 지적하고 기상수문국 사업을 근본적으로 개선하라고 지시했다. 다음 해 6월 조선중앙통신은 기상수문국이 지난 1년 동안 과학화, 현대화를 추진해 기상예보의 정확도를 높였다고 보도했다. 북한 스스로 ‘김정은 시대의 자랑찬 창조물’이라고 극찬하는 미래과학자거리가 조성되자 2016년 북한 기관 중 처음으로 기상수문국이 이곳에 입주했다. 이후 기상수문국은 자동기상관측장치를 개발하고 실시간으로 기상상태를 관측하는 체제를 갖추었다고 선전했다.

우리는 북한의 예보 능력을 정확히 알지 못한다. 북한이 1975년에 세계기상기구(WMO)에 가입했으나 국제협력을 거의 하지 않고 있다. 기상 정보를 민감한 군사 정보로 여기다 보니 기상관측 정보를 외부에서는 알기도 어렵다. 하지만 관측소나 장비의 수준 등을 고려할 때 북한의 날씨 예보 능력이 크게 향상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지난달 21일 조선중앙방송에 따르면 기상수문국은 미세먼지와 대기 질을 비롯한 기상 정보를 다각화하고 휴대전화용 애플리케이션도 개선하는 등 기상 서비스를 확대했다고 한다. 사실 남북한은 ‘호흡공동체’라 할 만큼 같은 대기 영향권에 있다. 하지만 북한의 대기측정 정보를 알지 못하니 우리 예보관들은 답답하다. 남북한이 기상 데이터와 기상 기술을 서로 교환한다면 남북한은 미세먼지와 날씨 예보의 정확도를 높일 뿐만 아니라 기상재해의 피해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의 기상 기술 수준을 끌어올리면 한반도에서의 기상재해 피해를 연간 7000억 원가량 줄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우리는 관계가 서먹할 때 날씨 이야기로 말을 시작하곤 한다. 남북 관계에서도 날씨 문제로 협력의 손을 서로 내밀어 보는 것은 어떨까.
 
차상민 케이웨더 공기지능센터장
#북한 기상청#기상수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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