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오후 9시경 서울 마포구의 한 주점 앞. 입장을 위해 줄을 서 있던 20대 남성이 일행에게 웃으며 한마디 툭 던졌다. 이 주점에서 불과 10m 떨어진 클럽 정문에 마포구청 공무원 3명이 ‘집합금지명령서’를 붙이는 모습을 보고 한 말이었다.
그들이 줄을 선 업소는 이른바 ‘헌팅포차’. 포장마차 주점에서 클럽처럼 즉석만남도 가능하단 뜻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날 오후 10시경 주점을 나서던 한 남성은 “6시 개장에 맞춰왔는데 10분 넘게 기다리다 들어갔다”고 귀띔했다.
● 유흥업소 막으니 헌팅포차 붐비는 풍선효과
서울 용산구 이태원 클럽 등에서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하자, 서울시가 9일 유흥시설에 대한 무기한 집합금지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클럽 등 유흥시설이 문을 닫자 20, 30대들이 헌팅포차로 몰려드는 ‘풍선 효과’가 벌어졌다. 일반음식점으로 분류되는 헌팅포차는 유흥시설 집합금지명령 대상에서 빠져 있기 때문이다.
동아일보가 이날 오후 7시 반부터 3시간 동안 마포구에 있는 헌팅포차 3곳을 둘러본 결과, 업소들은 바깥부터 시끌벅적했다. 업소마다 대기 인원이 20~30명씩 몰려들어 줄어들질 않았다. 이날 비까지 뿌렸지만 업소 입구 옆 우산꽂이엔 손님들의 우산 100여 개가 수북이 꽂혀 있었다.
이곳에서 ‘생활 속 거리두기’는 딴 나라 얘기였다. 직원들이 업소 입구에서 입장객들을 대상으로 △발열검사 △방문객 명단 작성 △마스크 착용 여부를 확인하긴 했다. 하지만 대기자 절반 이상이 마스크를 턱까지 내린 채 다닥다닥 모여 대화를 나눠도 제지가 없었다. 벽에 부착된 ‘2m 거리를 두고 기다리라’는 안내문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안쪽 상황은 더 심각했다. 9일 오후 10시 10분경 마포구의 한 헌팅포차 실내에 들어가 보니 손님 83명 가운데 마스크를 쓴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10명이 몰려 앉은 한 대형 테이블에선 술잔을 돌려 마셨고 안주로 나온 찌개를 덜지도 않고 나눠 먹었다.
헌팅포차를 찾은 박모 씨(24)는 “클럽에서 집단감염이 벌어졌단 얘긴 들었지만 딱히 불안하진 않다. 여긴 그 정도로 접촉이 빈번하진 않다”며 웃어보였다. 박 씨를 포함한 일행 3명들은 잠시 뒤 합석한 여성 3명과 서로 팔꿈치가 맞닿을 정도로 밀착해 앉았다.
● 다른 대형주점도 빈 자리 없어…지역감염 불안
젊은층이 많이 찾는 일반주점들 역시 빈 자리를 찾기 어려웠다. 9일 오후 8시경 마포구 한 대형주점은 최대 200명까지 수용할 정도였지만, 모든 테이블이 꽉 들어차 있었다. 하지만 직원들을 제외하면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은 1명도 없었다.
창문이 없어 환기조차 어려운 지하 주점도 상황은 엇비슷했다. 같은 날 오후 8시경 마포구에 한 술집은 80여 명이 빼곡해 지나다니기도 쉽지 않았다. 이모 씨(26)는 “주말마다 여기서 맥주 한두 잔씩 마신다. 지금까지 문제없었다. 이 정도는 괜찮지 않느냐”고 했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은 10일 브리핑에서 “건강한 청장년층은 코로나19에 감염돼도 큰 증상 없이 회복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의 감염이 지역사회로 번지면 고령자나 기저질환자에게 굉장히 치명적이다. 약자에 대한 배려를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앞서 9일 서울시가 클럽 등 유흥시설에 사실상 영업중지에 해당하는 집합금지 명령을 발령한 데 이어 10일 경기도와 인천시도 클럽, 룸살롬 등 유흥시설에 대해 2주간 집합금지 명령을 내렸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김하경 기자 whats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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