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개월만에… n번방 개설자 ‘갓갓’ 잡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5월 12일 03시 00분


고3이라더니… 잡고보니 20대 남성
범죄수익 한푼도 현금화 않고 IP주소 우회로 경찰추적 따돌려
9일 출석때도 “난 아니다” 부인, 5200쪽 수사기록 제시하자 자백
성착취물 제작-유포 혐의 영장 신청

아동 성 착취물 등을 제작·유포한 텔레그램 ‘n번방’의 최초 개설자로 알려진 ‘갓갓’(텔레그램 대화명)이 경찰에 붙잡혔다. 지난해 7월 수사에 착수한 지 10개월 만이다. 그동안 갓갓은 범죄수익을 한 차례도 현금화하지 않고 인터넷주소(IP주소)를 우회해가며 경찰의 추적을 피해왔다.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경북지방경찰청 사이버안전과는 아동·청소년 성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문모 씨(24)를 9일 긴급체포하고 11일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문 씨는 경기 안성시에 살고 있는 대학생인 것으로 파악됐다.

○ 범죄수익 현금화 0원… “재미로 ‘n번방’ 운영”

n번방은 지난달 13일 재판에 넘겨진 조주빈(25)이 운영한 텔레그램 ‘박사방’의 전신으로 알려져 있다. ‘박사’ 조주빈이 검찰 조사에서 “‘갓갓’을 보며 범행 수법을 익혔다”고 진술했을 정도로 문 씨와 조주빈의 범행수법은 유사하다.

문 씨는 2018년 말부터 지난해 3월까지 텔레그램에서 1∼8번까지 번호를 매긴 대화방을 만들어 아동 성 착취물 등을 제작·유포한 혐의를 받고 있다.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 피해자들에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메시지로 “고액 아르바이트를 제공하겠다”며 접근했다. 이후 얼굴이 나온 나체 사진을 받아내고, 이를 빌미로 성 착취물을 찍도록 협박하는 식이다. 이렇게 받아낸 성 착취물을 텔레그램 대화방에서 유료회원을 두고 입장료를 받으며 유포했다. 범행 방식이 거의 똑같다고 할 정도로 ‘박사’와 ‘갓갓’은 닮았다.

하지만 경찰은 “조주빈보다 갓갓의 범행이 더 악질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갓갓은 n번방에 입장하려는 회원들에게 1만 원 상당의 문화상품권 핀(PIN)번호를 입장료로 받았다. 그런데 조사 결과 이를 단 한 장도 현금화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 관계자는 “조주빈은 돈을 목적으로 박사방을 운영했다고 진술했다. 반면 ‘갓갓’은 돈이 목적이 아니다. 순전히 게임처럼 n번방을 운영했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 5200여 쪽 수사기록으로 자백 이끌어


문 씨는 경찰 수사망에 오른 뒤에도 텔레그램 대화방 등에 “나는 절대 붙잡히지 않는다”고 호언했다. 그만큼 치밀하게 경찰의 추적을 따돌려왔다. 경찰에 따르면 문 씨는 가상사설망(VPN)을 사용해 IP주소를 우회하는 수법을 썼다. 경찰이 문 씨의 IP주소를 추적하면 해외 주소지가 뜨는 식이다. 대화방에서도 고3 수험생인 척 신분을 속였다.

하지만 경찰은 끈질기게 추적했다. SNS에 남은 관련 단서를 바탕으로 IP주소를 추적해 지난달 초 문 씨가 갓갓이란 정황을 잡았다. 경찰은 지난달 말 경기 안성시에 있는 문 씨 자택을 압수수색해 휴대전화 등 관련 자료를 입수했다. 당시에도 문 씨는 “나는 갓갓이 아니다”라며 혐의를 부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문 씨의 자신만만했던 태도는 경찰 수사기록 앞에서 무너졌다. 문 씨는 9일 소환조사 때 경북지방경찰청까지 직접 찾아와 수사를 받았다. 초반만 해도 여전히 범행을 부인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경찰이 5200쪽이 넘는 수사기록을 일일이 내밀자, 결국 6시간여 만에 “내가 갓갓이 맞다”고 자백했다.

문 씨에 대한 영장실질심사는 12일 오전 대구지법 안동지원에서 열린다. 경북지방경찰청은 문 씨의 구속 여부가 결정되는 대로 신상공개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이소연 always99@donga.com / 안동=명민준 기자
#n번방#성착취 동영상#디지털 성범죄#갓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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