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월당 주변 재개발 사업 활발
80년 역사 이어온 ‘인쇄골목’
독립운동가 고택 등 사라질 위기
“지자체의 보존대책 마련 시급”
대구 중구 남산2동 계산오거리 인근 재개발 사업지인 명륜지구. 최근 이곳과 가까운 반월당 일대의 개발 여파로 사업 추진 속도가 빨라졌다. 명륜지구 상당 부분은 대구 주요 특화거리로 꼽히는 인쇄골목이 차지하고 있다. 재개발이 본격화되면 이곳의 인쇄 업체의 이전과 폐업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80년 골목 역사와 전통이 곧 사라질 것이라는 이야기가 적지 않다.
대구 근현대사 전문가들은 명륜지구 개발로 인해 독창적인 문화유산을 잃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곳곳에는 독립운동가의 고택 같은 역사의 숨결이 깃든 공간이 많다.
이처럼 대구 곳곳에서 추진되고 있는 재개발 사업이 각종 문화유산과 명소의 존재를 위협하고 있다. 역사 고택이 곧 철거될 위기에 놓였는가 하면 전국적인 명성을 자랑하는 문화공간이 사라지고 있다.
명륜지구는 역사적 고증부터 절실하다. 이곳 290여 가구 가운데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독립운동가나 문화예술인들의 고택 혹은 생가가 상당수 포함돼 있다. 현재 이곳에 공식적으로 확인된 문화유산은 애국지사 서상교 선생(1923∼2018) 고택과 이종암 선생(1896∼1930) 고택이다.
이 선생은 대중에게 잘 알려진 독립운동가인 김원봉 선생(1898∼1958)과 함께 비밀 무장 독립운동단체인 의열단을 조직해 부단장으로 활약했다. 서 선생은 1942년 일제강점기에 항일학생결사 조직인 태극단을 결성한 인물로 항일학생독립운동사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근현대사 전문가들은 명륜지구가 사료적 가치가 높다고 주장한다. ‘대구 독립운동 유적 100곳 답사여행’을 쓴 정만진 작가는 “일제강점기에 남산동을 중심으로 많은 독립운동가와 문화예술인이 거주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남산동 내 다른 개발 지역에서도 이육사 고택과 전태일 생가가 확인돼 논란이 일었다. 공식 발굴되지 않은 것도 다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명륜지구에서 차로 5분 거리의 남구 이천동 고미술거리는 재개발에 사라질 위기다. 1960년대에 생긴 이곳은 고미술품 등 골동품을 판매하거나 수리하는 업체들이 모여 서울 인사동 다음으로 전국에 명성을 떨쳤다.
60년 전통의 고미술거리는 지난해 3월 지방자치단체의 재개발 사업 승인으로 명맥 유지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현재 거리 내 상점 50여 개 가운데 18개가 철거를 앞두고 가게를 비웠다. 남은 상점도 미래가 불투명하다. 고미술상점 업주 허인 씨(70)는 “상인들이 임차료 상승으로 인해 떠날 수밖에 없다. 고미술거리가 사라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전했다.
재개발 사업으로 문화유산 흔적을 찾을 수 없는 곳도 있다. 중구 북성로 공구골목 일대 일제강점기 건물 50여 채가 힐스테이트 대구역 아파트단지 공사로 인해 철거된 상태다.
상황이 이렇지만 지자체의 보존 대책은 거의 전무하다. 대구시 관계자는 “개발 업체와 논의해 문화유산을 다른 곳에 복원하거나 기념관을 건립하는 방식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도시문화 및 역사 전문가들은 지자체가 현재의 위치에 문화유산을 보존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박창원 톡톡지역문화연구소장은 “6·25전쟁 때도 부서지지 않은 대구지역 구도심의 옛 건축물들은 역사적 보존 가치가 높아 훼손 없이 지켜야 한다. 개발 승인 전에 도심 곳곳을 살펴보고 문화유산이 많은 지역은 프랑스 파리 같은 선진 관광도시처럼 보존 지구로 지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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