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이 한명숙 전 국무총리 뇌물수수 사건에 대한 재조사를 요구하고 나섰다.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는 20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법무부와 검찰이 한 전 총리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일에 즉시 착수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 인터넷 언론이 고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의 옥중 비망록 내용을 보도한 지 6일 만이다. 비망록엔 검찰이 추가 기소 등을 언급하면서 한 전 대표에게 수사에 협조할 것을 강요해 ‘한 전 총리에게 뇌물을 줬다’고 허위 진술을 했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겼다.
2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출석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구체적인 정밀 조사가 필요하다는 점에 충분히 공감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재조사 요구에 대해 대법원 확정 판결까지 뒤집으려 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2010년 한 전 총리 뇌물수수 사건을 맡았던 수사팀 관계자는 “비망록은 한 전 총리 재판과정에 증거로 제출돼 엄격한 사법적 판단을 받은 문건”이라며 “법원이 ‘검사의 회유 협박’ 등 주장은 모두 근거가 없다고 판단해 유죄 판결을 선고하고 확정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20일 법사위 전체회의에 출석한 조재연 법원행정처장은 “확정된 재판에 대한 의혹 제기가 증거가 될 수 없다. 의혹 제기만으로 과거 재판이 잘못됐다는 식으로 비춰질까 염려 된다”고 했다. 조 처장은 ‘불신 조장보다 재심 청구가 억울함을 밝히는데 가장 좋은 방법이냐’는 미래통합당 김도읍 의원 질의에 “네”라고 답했다.
● ‘검찰의 회유 협박’ 비망록에 수사팀은 “허위 사실” 공책 29권, 약 1200쪽 분량인 한 전 대표 비망록엔 ‘검사의 회유 협박이 있었다’, ‘검찰이 허위진술을 암기하게 해 증언을 조작했다’, ‘친박계 정치인에게 6억 원을 제공했다고 했는데도 검찰이 덮었다’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당시 검찰 수사팀은 “한 전 사장은 구치소에 수감돼 있는 동안 통상의 노트에 ‘참회록, 변호인 접견노트, 참고노트, 메모노트’ 등의 제목을 붙인 뒤 검찰 진술을 번복하고 법정에서 허위 증언을 하려는 계획 등을 기재했다”며 “이런 노트를 법정에서 악용하기 위해 다수의 허위의 사실을 기재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법원은 1~3심 재판에서 (비망록) 문건을 증거로 채택했고, 대법원은 이 문건과 다른 증거를 종합해 한 전 총리에게 징역 2년의 유죄를 확정했다”며 “당시 재판부와 변호인은 (비망록) 내용을 모두 검토했기 때문에 내용이 새로울 것도 없고 아무런 의혹도 없다”고 했다.
검찰 수사단계에서 “한 전 총리에게 뇌물을 줬다”고 진술했던 한 전 대표는 한 전 총리에 대한 1심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진술을 뒤집었다. 이 같은 진술 번복으로 1심 법원은 한 전 총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2심 법원은 한 전 대표의 검찰 진술이 일관되고 법정에서 진술을 뒤집은 경위가 석연치 않다고 봐 유죄를 선고했다. 대법원도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2015년 8월 유죄를 선고했다. 한 전 총리가 수뢰한 9억 원 중 수표로 건네진 1억 원을 포함한 3억 원에 대해서는 유죄라는 의견이 전원일치였다. 나머지 6억 원은 유죄 8명, 무죄 5명으로 의견이 갈렸다. 검찰에서 했던 진술을 법정에서 뒤집은 한 전 대표는 위증 혐의로 기소돼 2017년 5월 징역 2년의 유죄 판결이 확정됐다.
● “한 전 총리에 대한 부채의식과 검찰 개혁 위한 포석” 민주당 지도부가 ‘한 전 총리 뇌물수수 사건’에 대한 재조사를 요구하고 나선 데는 크게 두 가지 배경이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우선 부채의식 때문이다. 한 전 총리는 문재인 대통령 집권 이후 특별사면 대상에 올랐지만 만기 복역했고, 아직 복권되지 않았다. 2015년 8월 대법원이 한 전 총리의 유죄를 확정하자 당시 야당 대표였던 문 대통령은 “진실과 정의의 마지막 보루인 사법부가 권력에 굴복한 참담한 결과”라는 반응을 내놓았다.
2009년 12월 수뢰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던 한 전 총리가 2010년 5월 한 전 대표에게서 금품을 받은 혐의로 추가 기소된 점 등을 부각시켜 검찰 수사관행의 문제점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추 장관은 20일 “검찰의 과거 수사관행이 상당히 문제가 있다고 국민들도 이해하고 그런 차원에서 어제의 검찰과 오늘의 검찰이 다르다는 모습을 보여야할 개혁 책무가 있다”고 했다.
황성호기자 hsh0330@donga.com
박성진기자 psj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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