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된 삶의 현장을 지키던 노동자 38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천 물류창고 화재 참사가 29일로 발생 한 달째를 맞는다.
갑작스레 닥친 화마에 사랑하는 가족과 생이별을 한 유족들은 이날 빈소를 지키는 대신 청와대로 향한다. 참사의 원인 규명은 물론, 책임자 처벌, 보상 협의 등 무엇하나 제대로 해결된 게 없어서다.
생계마저 포기한 채 고인이 된 가족 곁을 지키던 한 유족은 국민청원을 통해 “시간 싸움에서 손해는 피해자 유가족들뿐”이라며 “아마도 저희가 지쳐 떨어져 나갈때만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화재 원인·책임자 처벌 지지부진
화재 참사 당일 125명 규모 수사본부를 꾸린 경찰은 조속한 원인 규명과 함께 현장 위법사항에 따른 책임자 처벌을 약속했다.
하지만 참사 발생 한 달이 다 되도록 경찰의 ‘성과’는 나오지 않았다.
4차례의 공식 합동감식을 진행했지만 이렇다 할 결론은 도출되지 않았고, 현재까지 시행·시공·감리사 등 책임 업체 관계자가 구속되는 일도 생기지 않았다.
판박이 참사인 지난 2008년 이천 냉동창고 화재 때 불과 8일만에 관련자들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한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현재 경찰은 수사 진척 상황을 언론에 공개하는 것조차 꺼리고 있다.
지난 16일 시공사 대표 구속 수사를 요구하는 유가족을 찾아 “철저히 조사하겠다”며 일부 수사 상황을 전달한 이후 경찰이 추가로 내놓은 공식 성과는 없었다.
화재 원인을 두고도 경찰은 “현장이 광범위하고 수거물에 대한 심층분석 등 복잡한 단계를 거쳐야 한다”며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참사 관련 업체들이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유족은 “경찰에 수사상황을 물어보면 원론적인 이야기만 늘어 놓는다”며 “경찰은 사태가 잠잠해지길 원하는 것 같다. 논란이 커질수록 정부에 대한 좋지 않은 여론이 형성될 것을 우려하는 것 아니겠냐”고 의심했다.
그러면서 “(경찰이) 확실한 책임을 지우지 않다보니 관련 업체들도 눈치만 보며 보상협의에 성실히 임하지 않는 등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발걸음 끊긴 분향소 ‘썰렁’…유가족들 ‘한숨만’
38명의 위패와 영정이 안치된 이천 창전동 서희청소년문화센터는 점차 찾는이들의 발길이 끊기면서 썰렁한 모습이다.
현장을 지키던 유가족들도 생계와 양육 등 현실 문제 해결을 위해 가족 대표 1명씩 정도만 남아 쓸쓸히 고인 곁을 지키는 상황이다.
일반 시민 조문객들만 간간이 방문할 뿐 참사 초기 줄을 잇던 정관계 인사들은 사회적 관심이 사그라들자 더 이상 분향소에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법률대리인을 통해 개별적으로 진행하는 보상협의도 지지부진한 상태다. 이로 인해 희생 노동자 대다수는 아직 장례조차 치르지 못했다.
유가족들은 참사 발생 한 달째인 29일 잠시 동안 분향소를 떠나기로 했다. 청와대 앞에 모여 조속한 원인 규명 및 책임자 처벌을 촉구할 계획이다.
박종필 유가족 대표는 “이미 지칠대로 지쳤다. 상황이 장기화될 수록 유가족들의 고통은 커진다”며 “조속한 원인규명과 그에 따른 책임자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 이 같은 목소리를 내기 위해 청와대로 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번 화재는 지난 4월29일 오후 1시32분께 이천시 모가면 소고리 물류창고 신축 현장에서 발생했다. 현장 작업자 78명 가운데 38명이 숨지고 10명이 부상했다.
(이천=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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