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한라산 해발 1600∼1700m 고산평원인 선작지왓과 윗세오름 일대는 산철쭉이 절정을 이뤘다. 털진달래가 연분홍 물결을 이뤘던 이곳은 산철쭉이 붉은빛의 꽃을 활짝 피우며 마치 양탄자를 깔아놓은 듯했다. 제주 산악계 선구자인 김종철(1927∼1995)은 선작지왓 일대의 꽃 무더기를 보고 ‘진홍빛 바다의 넘실거림에 묻혀 있으면 그만 미쳐버리고 싶다’고 표현할 정도였다.
오름(작은 화산체)을 집대성한 책 ‘오름 나그네’를 펴낸 김종철은 오름을 중요 경관자원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는 오름과 더불어 한라산에서 살다시피 했다. 한라산을 1000회 이상 오르내렸고 1961년 국내 최초의 민간 산악구조대인 ‘제주적십자사 산악안전대’ 초대 대장을 맡아 많은 인명을 구조하고 산악문화의 기반을 다졌다.
그는 육신의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그의 아내인 김순이 씨(74)는 “한라산을 마치 어머니나 그리운 연인 대하듯 바라보면서 ‘죽으면 한라산에 들어가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며 “가족이나 산악계 동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화장을 유언으로 남겼다”고 말했다. 그의 유골은 선작지왓의 용암돌탑인 높이 2.6m의 ‘탑궤’ 주변에 뿌려졌다. 상산(上山) 꽃밭 너머로 백록담 화구벽을 바라보는 곳이다. 한라산을 경외의 대상으로 여기고 그 품에 스며든 것이다. ‘지리산 산신령’으로 불렸던 허만수(1916∼?)가 등산객을 안내하고 보호하는 데 일생을 바치고 난 뒤 “지리산에 영원히 들어가니 찾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 1976년 6월 홀연히 산속으로 사라진 것과 닮았다.
이런 모습은 동양, 특히 한국에서 나타나는 산과의 ‘일체화’로 해석할 수 있다. 최원석 경상대 교수(지리학)는 “서양에서는 산이 정복의 대상이지만 중국 북부에서는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신비스러운 공간으로 여겼고 화산지대인 일본에서는 삶터와 단절된 두려운 신(神) 같은 존재로 인식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최 교수는 “한국에서는 설화적 요소가 강하고 ‘산이 곧 어머니’라는 등식으로 의인화됐다”고 밝혔다. 한라산 산세는 설악산 등에 비해 부드러워서 더욱 친근하게 다가왔다. 제주 창조신화의 주인공인 ‘설문대할망’ 이야기에서 볼 수 있듯이 어머니처럼 ‘따스하다’는 이미지를 담고 있다.
‘산에서 태어나, 산으로 돌아간다’는 의식은 전문 산악인에게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장덕상 전 제주산악안전대장은 “산악인들은 베이스캠프를 차리고 정상까지 등반하는 극지법을 비롯해 독도법, 동계훈련, 응급처치 등 한라산에서 훈련을 하면서 상당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안식처’, ‘영혼의 고향’이라는 생각을 갖는다”며 “사고로 영면한 산악인을 기리는 추모기념물이 한라산 곳곳에 자리 잡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1977년 한국인 최초로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를 등정한 고상돈(1948∼1979)을 기리는 케른(케언·이정표나 기념을 위해 쌓은 돌무더기나 석총)은 장구목 능선(해발 1750m)에 세워졌다. 제주 출신인 고상돈은 1979년 북미 최고봉인 알래스카 매킨리산(현 디날리산) 등정에 나섰다가 하산 도중 추락사했다. 제주지역 산악인들은 이듬해 백록담이 보이는 곳에 케른을 만들었다.
서귀포시 출신 오희준(1970∼2007)은 1999년 초오유를 시작으로 2006년 마나슬루까지 히말라야 8000m급 10좌를 단 한 번의 실패도 없이 등정하는 데 성공한 산악인이다. 2007년 5월 16일 에베레스트 남서벽 ‘코리안 루트’를 개척하다가 눈사태로 숨지자 당시 제주 산악계는 충격이 컸다. 동료 선후배 산악인들이 그를 기리기 위해 백록샘(해발 1680m) 부근에 높이 2m의 케른을 세웠다. 백록담 화구벽 장관이 정면으로 눈에 들어오는 곳이다.
1936년 1월 3일 경성제국대 산악부 9명이 한라산에서 겨울 등반훈련을 한 후 하산하다 마에카와 도시하루(前川智春)가 조난됐다. 그해 5월 시신을 발견하고 이듬해 8월 왕관릉 부근에 케른과 추모비를 세웠는데 한라산에서 최초의 산악인 조난사고사 기록이다. 1961년 1월 조난사한 서울대 법대 산악부 이경재(당시 20세)를 기리는 기념비는 관음사 입구에 있으며 장구목(해발 1800m)에는 제주대 산악부, 매킨리 원정대원 등 추모동판 3개가 암벽에 새겨져 있다.
장구목과 능선 주변에 추모기념물이 몰려 있는 것은 이 일대가 국내 동계 산악훈련의 ‘성지(聖地)’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오문필 전 한라산등산학교 교장은 “용진계곡과 장구목 일대의 강한 눈보라, 순식간에 변하는 악천후, 깎아지른 듯한 절벽 등이 히말라야 고산지대와 비슷해 동계훈련의 최적지”라며 “해외 원정을 나가는 산악인치고 한라산에서 동계훈련을 하지 않은 사람은 드물다”고 말했다.
지난겨울 시즌에는 18개 팀이 동계훈련을 신청해 11개 팀, 117명이 훈련을 마치는 등 해마다 100∼200명 규모의 산악인이 장구목 일대에서 설상 훈련을 한다. 한라산국립공원관리사무소는 매년 1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용진계곡과 장구목 일대의 적설량이 20cm 이상인 경우에 한해 훈련을 허용하고 있다.
산악인을 추모하는 케른이나 비석은 문화재청의 현상변경허가를 받아 설치해야 하지만 대부분 허가를 받지 않은 채 들어섰다. 제주지역 한 원로 산악인은 “뛰어난 업적을 세운 산악인의 케른을 암묵적으로 용인해 줬는데 산악인을 추모하는 공간을 공식적으로 만들어 일반 탐방객이 산악인의 도전정신과 기상을 이해하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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