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부는 2일 수출규제 조치와 관련하여 일본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는 절차를 재개하기로 했습니다. 앞서 1일 대구지방법원 포항지원은 일본 전범 기업 자산에 대한 현금화 조치를 이행하는 사법 절차에 착수했습니다. 한일 양국 간 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지는 국면입니다.
일본 정부는 추가 보복 조치를 경고하고 나섰습니다.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일본 외상(사진)은 5일 기자회견에서 “현금화가 되면 심각한 상황을 초래하므로 피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외교 경로를 통해 확실하게 협의하고 싶다”고 밝혔습니다.
일본은 지난해 7월 한국을 상대로 반도체 핵심 소재인 고순도 불화수소,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포토레지스트에 대한 수출규제 조치를 단행했습니다. 한국은 지난해 11월 미국의 중재로 WTO 제소 및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라는 대응 카드를 잠정적으로 접었습니다. 일본과의 대화를 지속하겠다는 뜻을 내보인 겁니다. 그러나 1년이 지나도록 한일 양국의 협상은 한 발도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관련한 한국 사법부의 판단에 영향을 미치겠다는 일본 측의 주장은 받아들일 여지가 없었습니다. 우리 정부가 당시 일본이 문제 삼은 것들을 모두 해결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규제를 철회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우리 정부는 지난달 말까지 시한을 정해 일본에 최후통첩을 했습니다. 하지만 일본이 응하지 않자 예정대로 WTO 제소 절차 재개를 결정한 겁니다. 그런 면에서 모테기 외상의 발언은 뒤늦은 셈입니다.
산업통상자원부 고위 관계자는 “감당할 수 있다고 판단해 WTO 제소 절차를 재개한 것”이라며 “명분과 실질적 능력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밝혔습니다. 정부의 이런 조치는 수출규제 품목의 국산화 및 수입처 다변화 성과에 따른 자신감이 반영된 것으로 보입니다. WTO로 넘어가면 분쟁을 심의할 패널 구성부터 보고서가 나오기까지 통상 1, 2년이 걸립니다. 항소 절차까지 포함하면 두 나라의 분쟁은 3, 4년까지 걸릴 것으로 전망됩니다.
이에 대해 모테기 외상은 “수출 관리를 적절히 하겠다”는 원론적 입장을 되풀이하며 “한국이 제소를 해도 결론이 나지 않는다.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고 덧붙였습니다. WTO 사무총장 자리가 현재 공석인 데다 최종심에 해당하는 분쟁해결 기구인 상급위원회도 정족수 부족으로 작동하지 않고 있는 상황을 염두에 둔 발언입니다.
일본 내부 사정도 복잡합니다. 한국 반도체 업계가 자체 조달 능력을 갖추면서 오히려 일본 수출 기업이 부메랑을 맞고 있다는 평가가 일본 내에서 나왔습니다. 불화수소 세계 1위 업체인 일본 스텔라케미파의 지난해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31% 감소하는 등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일본의 추가 경제 보복에 대비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들은 비상계획 가동에 들어갔습니다. 아직 국내의 대체재가 제한적이고, 여전히 일본의 기술력이 높은 소재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미중 무역분쟁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가 된 반도체 업계는 일본의 추가 규제로 설상가상의 상황에 직면할 수 있습니다. 가까우면서도 먼 나라 한국과 일본이 해묵은 갈등을 해결하고 상생할 수는 없을까요. 명분보다는 양국 모두의 실리에 묘수가 숨어 있을 겁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