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도심에서 가장 높은 계양산 동쪽 봉우리에 남아 있는 계양산성의 성곽이 보인다. 계양산 정상에서는 서쪽으로 영종도와 강화도, 동쪽으로 김포공항을 비롯한 서울시내, 북쪽으로 경기 고양시, 남쪽으로 인천시내가 훤히 내려다보인다. 계양구 제공
인천의 주산(主山)으로 불리는 계양산(해발 395m)에는 삼국시대 축조된 군사 요충지로 알려진 계양산성이 남아 있다. 계양산 동쪽 봉우리에 자리한 계양산성(둘레 1184m)은 한강 하류와 서해 연안을 관할하는 핵심 거점으로 치열한 영토 전쟁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성곽이다.
백제가 처음 성을 쌓은 이래 통일신라시대를 거쳐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도 활용돼 오랜 시간에 걸친 축성술의 변천을 확인할 수 있는 유적으로도 높이 평가받는다.
계양구는 계양산성의 역사적 가치를 확인하기 위해 1997년부터 수차례에 걸쳐 지표 발굴 조사와 함께 국제학술대회를 열었다. 2012년 ‘계양산성 정비 기본 계획’을 만들어 1000여 곳에 이르는 분묘를 이전하고 사유지도 매입한 뒤 성벽을 단계적으로 보수하는 등 계양산성 복원에 나섰다.
2016년 문화재청에 계양산성에 대한 국가지정문화재(사적) 지정을 처음 신청한 뒤 보완 서류 등을 제출하며 다섯 차례의 현지 실사와 문화재위원회 검토 과정을 거쳤다. 학술연구용역과 성벽에 대한 정밀조사도 진행했다.
문화재 발굴 조사에서는 다양한 유적과 유물이 발굴됐다. 3, 4세기경 것으로 추정되는 석축우물의 집수정(集水井)이 발견됐다. 폭 15m, 깊이 7m의 집수정 밑바닥은 물이 땅으로 스며들지 않도록 1m 두께의 점토로 다져졌다. 집수정 주변에서는 밑이 둥근 그릇(원저단경호·圓底短頸壺)과 뚜껑이 있는 대접 등 도자기류가 출토됐다. 통일신라시대의 대표적 토기인 인화문(印花紋) 토기와 고려시대 기와도 나왔다. 철제 화살촉이나 창과 같은 무기류와 함께 종이가 유통되기 전에 문자를 기록하던 백제시대 목간(木簡)이 출토됐다.
문화재청 문화재심의위원회는 지난달 13일 계양산성을 사적으로 의결했다. 사적은 역사적으로나 학술적으로 가치가 뛰어나 국가가 법으로 지정해 보호하는 문화재다. 이에 따라 계양구는 문화재청과 함께 ‘계양산성 종합정비 기본계획’을 수립해 성곽과 주요 시설을 복원해 나갈 방침이다. 성곽의 체계적인 보존과 관리를 위한 사업도 병행하기로 했다.
또 계양산성의 가치를 알리기 위해 2015년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연면적 1998m²)로 착공한 계양산성박물관을 지난달 개장했다. 상설 및 기획전시실과 체험실, 수장고, 전망대 등을 갖췄으며 계양산성 터에서 발굴된 유물을 볼 수 있지만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휴관한 상태다.
계양구 관계자는 “우리 구에는 계양산성을 비롯해 부평도호부 관아, 어사대, 부평향교 등과 같은 문화재가 남아 있다”며 “인천 역사의 중심적 역할을 담당해 왔던 지역임을 알리는 사업을 지속적으로 펼칠 계획”이라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