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는 이날 서울 관악구 대학길과 신림로11길 사이에 있는 박종철거리에 ‘박종철 벤치’를 설치했다. 깔끔하고 평평한 벤치에 박 열사가 잠깐 휴식이라도 취하듯 편안하게 걸터앉은 모습이다.
박 열사의 동상은 굳게 입을 다문 표정의 영정(影幀)에선 볼 수 없던, 옅은 웃음기가 감도는 입매가 도드라졌다. 열사의 누나인 박은숙 씨(57)는 “33년이 지나도 항상 보고 싶다. 이렇게 만지니 진짜 동생 얼굴 만지는 기분이다”며 눈물을 흘렸다.
이 동상은 서울대 84학번 동기인 김찬휘 씨(55)를 포함한 동문들의 모금에서 시작됐다. 여기에 관악구가 예산을 보탰고 서울대 미대가 제작을 맡았다. 벤치엔 ‘저들이 비록 나의 신체는 구속을 시켰지만 나의 사상과 신념은 결코 구속시키지 못합니다’란 글이 새겨졌다. 1986년 구속 당시 박 열사가 쓴 편지에서 발췌했다.
사업회는 당초 제막식을 계획했다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 방지를 위해 ‘릴레이 방문’으로 행사를 대체했다. 이날 일부 주민과 학생들은 박 열사 동상을 관람하고, 벤치 옆에 앉아 손을 잡기도 했다. 주최 측에서 준비한 장미꽃을 벤치에 올려두고 가는 시민도 있었다.
벤치 곁 나무에는 메시지가 적힌 포스트잇도 수십 개 붙었다. ‘죽음이 아닌, 열사의 삶을 기억하겠습니다’란 글도 있었다. 서울대에 다니는 박정민 씨(28)는 “6월 항쟁이 가진 의미가 요즘 들어 더욱 크게 다가온다. 선배에게 감사하며 우리 세대도 그 정신을 이어나갈 수 있길 바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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